한국은행이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 4%는 여러 갈래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성장률만 비교하면 금년(4.7%)보다 내년이 더 나빠 보이지만, 내용상으론 ‘상반기 침체(3.4%)-하반기 개선(4.4%)’의 긍정적 회복곡선이 그려진다는 것이 첫번째 해석이다.특히 올해 20%가 넘었던 수출증가율은 한 자릿수(9.8%)로 둔화하는 대신 민간소비 증가율이 2년에 걸친 마이너스 행진에서 탈출(1.8%)할 것으로 보여 수출-내수의 갭도 어느 정도 메워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성장률 자체는 떨어져도 내수의 성장기여도가 높아져 체감경기는 올해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한은의 시각이다.
박승 한은총재는 "올 4·4분기 성장률이 3%대로 낮아졌지만 전년동기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에 따른 반사 효과인 만큼 경기가 더 나빠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이런 횡보상태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되다가 하반기엔 완만한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경기는 L자형이며, 내년 3·4분기 이후부터 U자형으로 전환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비관적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년 성장률이 4%에 머물 경우 한국경제는 2002년(3.1%)이후 3년 연속 잠재성장률(5%)을 밑돌게 된다. 경제개발 시작이래 처음 있는 일로, 이제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사실 하반기이후 소비·투자가 살아난다 해도, 기조적 회복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 소비침체는 단지 신용불량자나 부동산규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고용불안과 급속한 노령화가 낳은 구조적 산물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개인들을 짓누르는 한 가처분소득이 늘어도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택할 공산이 높다. 늘어나는 해외지출(여행 유학 연수)은 그나마 작은 국내소비의 파이마저 갉아먹고 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2~3년새 투자의 산업연관고리가 상당부분 끊어졌다"며 "투자할 곳은 정보기술(IT)뿐이지만 대부분 수입기계류에 의존하고 있어 대기업들의 첨단투자효과가 중소부품업계로 확산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소비와 투자는 내년 하반기, 나아가 그 이후에도 근원적 개선은 기대할 수 없으며 때문에 한국경제는 ‘경기순환적 불황터널’에선 벗어나더라도 그 앞엔 더 긴 ‘구조적 저성장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년 4% 성장에는 변수도 많다. 한은은 국제유가를 하락쪽으로 점쳤지만, 실제 기름값이 올해처럼 상승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원·달러환율도 대략 1,000~1,0 50원을 가정했지만, 여기에도 달러약세나 위안화 절상 등 예측불허요인이 많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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