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6월 국민연금 기금의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키 위해,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123조원에 이르는 기금의 적절한 투자처를 찾는 일은 중요하나 사안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금의 주식투자와 관련해 기금 자체의 안전성 및 수익성 측면과, 투자 대상이 되는 민간 기업의 양 측면에서 경제 전체의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노후 생활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안전하게 관리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은 변동이 심한 편이어서 주식투자는 자칫 연금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더구나 수익성보다 경기부양 목적으로 자금이 사용된다면 연금의 안전성은 더욱 심각하게 위협 받게 된다. 소유권을 정부가 가진 국민연금의 수익사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질 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소유는 사실상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기구가 성공적 주식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고 해도 국민연금 설계상의 요구 수준까지 올릴 수는 없다. 따라서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해도 기금을 고갈시키지 않고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설계된 국영 국민연금 제도가 기금을 투자 자금화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국민연금의 민영화 주장에 정부가 귀를 기울였다면 현실적인 연금 구조를 만들고 민간기금 운용회사들의 경쟁적 금융기법을 통해 주식 및 채권시장을 효과적으로 떠받칠 수 있었을 것이다.
투자 대상이 되는 민간기업 차원에서의 문제는 연금공단이나 별도 기구가 기관투자가로서 주식의 의결권을 가지려 한다는 데에 있다. 보유 주식을 바탕으로 한 의결권은 당연하나 문제는 의결권 행사주체가 정부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 지배력이 커짐으로써 시장과 기업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자유시장경제가 심각하게 위협 받고 왜곡될 수 있다.
정부는 기금으로 매입한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외국 자본으로부터 국적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가 고객 돈으로 계열기업을 지배하는 것을 어렵게 하기위해 이들이 가진 주식의 의결권을 더욱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민간 소유 자산으로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은 제한하고 정부가 소유권을 가진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제한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정부의 기업지배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즉 정부가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을 열어 놓겠다는 것이다. 경영권 방어가 문제라면 금융계열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 제한과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 기업 스스로 경영권 방어 환경을 마련하는 방안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고 현재 노후를 위한 장기 저축을 대체하고 있는 연금 기금이 투자 자금으로 환류되지 못한다면 경제 성장률은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기금이 안전하게 유지됨은 물론,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설계상 요구되는 고수익 달성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연금 설계가 잘못돼 현실적으로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요컨대 국민연금은 주식투자 문제 이전에 단기적으로 현재의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혁신하여 기금의 고갈시점을 연기하고, 장기적으로는 민영화함으로써 기금운용으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연금이 지급되도록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런 핵심은 외면한 채 경기 부양책으로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당분간 주식투자는 지금처럼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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