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던 정치권이 타협을 이룬 것은 다행이다.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대치 속에 친일규명 문제나마 합의점을 찾은 것은 스스로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사안마다 걸린 명분과 이해가 다르지만, 합리적 절충과 타협을 통해서만 정치권과 사회 전체가 소모적 갈등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여야 합의안이 논란을 모두 해소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쟁점인 진상규명위원회의 성격을 대통령 소속 국가기관으로 했으나, 정치색을 배제한 민간기구로 해야 한다는 이견은 여전할 것이다. 위원회를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나눠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하고 위원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정치적 중립성은 높였지만, 시민단체의 참여 여지를 좁힌 점에서 반발이 예상된다.
여야 지도부의 개인사와 얽혀 감정대립을 부른 조사대상을 모든 일제 경찰과 헌병, 일본군 소위 이상 등으로 넓힌 것은 대상이 4만명을 넘어 조사의 실효성이 의심된다. 표적조사가 논란 될 소지는 더 커졌다. 다만 조사범위를 행위자에서 행위 중심으로 바꾼 것이 이를 막는 데 도움될 것이다. 조사내용의 사전공표를 금지한 것도 정치적 악용을 막기 위해서는 바람직하다.
친일 진상규명은 국민 다수가 바라는 과제다. 그런데도 극단적 갈등을 부른 것은 정치세력들이 과거청산 명분보다 현실의 이해를 다툰 탓이 크다. 세월의 그늘에 가린 민족사의 불행을 그릇된 자세로 뒤지는 데 따를 폐해는 친일규명을 앞장서 외친 이들이 일찌감치 부메랑에 맞은 아이러니가 뚜렷이 보여 주었다. 그 교훈은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규명도 민족 모두가 불행했던 시대를 산 이들의 과오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역사를 반성하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다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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