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연습하고 3·1절에 애국시 낭송하는 코너에 투입됐는데, 온 국민이 제 목소리 듣는다는 생각에 어찌나 흥분 했던지 목소리 진동 때문에 마이크가 고장 났어요." 1960, 70년대 ‘천의 목소리’로 불리며 엄앵란 김지미 윤정희 등 당대 여배우들의 목소리 대역을 도맡았던 성우 고은정(68·사진)씨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는 "1954년 대학 연극반 선배들 따라 KBS 1기 공채 성우 시험을 보러 갔다가 덜컥 붙은 후 나 아니면 방송 무너질 것 같은 착각과 짝사랑으로 애 낳는 날까지 일했다"고 지난 반 백년을 회고했다.그는 요즘 라디오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KBS 1라디오(97.3MHz) ‘KBS무대’에서 5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11시10분 성우 1기생들의 50년 연기인생을 그린 드라마를 방송 중인데, 26일에는 그의 작품 ‘만남’이 전파를 탄다. "86년 암으로 세상 떠난 신원균, 이창환씨 얘기를 통해 저희가 걸어온 길을 들려주려 해요. 오승룡, 김소원씨 등 1기 동기생들이 모두 출연합니다."
2000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그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 서울예대와 KBS 아카데미에 출강하고 있고, 올 8월 ‘어머니의 애가’라는 45분짜리 모노 라디오 드라마를 직접 쓰고 출연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도 여전하다. "특별히 관리 하는 거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 냉수 먹으면 좋다고 해서 50년째 수돗물 마시고 있는 거 말고는."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따로 있다. "짧은 대사는 연습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성우들이 있는데 하다 보면 한 마디도 제대로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죠. 또 화법이나 정서 표현이 구닥다리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귀를 열고 듣고 있어야 하고요."
한국 최초의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 출연을 비롯해 종일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되던 최전성기를 누렸던 그는 요즘 라디오 드라마의 실종을 안타까워했다.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라디오 드라마의 매력은 상상력이죠. 일본 NHK에서는 28년간 ‘일요드라마’라는 라디오 드라마를 방송했어요. 우리도 방송사들이 과감한 투자만 해준다면 품격 높은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텐데요."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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