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락 프로그램이 위기다. 상대방의 외모나 약점을 막말로 들추는 ‘일요일이 좋다’의 ‘당연하지’, 소재 고갈로 연예인 신변잡기 소개가 주가 되어 버린 ‘야심만만’(SBS). 에듀테인먼트를 표방했지만 일본 프로그램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 1교시’의 ‘탈출 품행제로’(KBS). 침체에 빠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천생연분’식 짝짓기를 되풀이하는 ‘러브서바이벌 두근두근’(MBC).그뿐 아니다. MC는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김제동 박수홍 등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본업을 알 수 없는 오락용 연예인들이 ‘게스트’란 명패로 방송3사를 돌고 돈다. 발명된 지 몇 해 지난 ‘쟁반노래방’ ‘야심만만’ 말고는 새로운 포맷이 눈에 띄지 않고, ‘짝짓기’ ‘설문조사형 토크쇼’ 같은 이미 검증된 포맷의 복제품만 나돈다. 제작진은 "그냥 즐기라고 만든 오락 프로에 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냐"며 오락 프로그램 전반의 퇴행에 대한 비판에 무감각하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의 말처럼 "‘베끼기, 겹치기, 벗기기’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만한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주목 받는 오락 프로그램이 없어요. ‘새 것만이 살길이다’고 외치지만 참 고민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할 만한 여건이나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으니."(장태연 MBC 예능국장) "예능작가의 능력이 요즘엔 연예인에게 (섭외) 전화 잘 하는 것과 동일시되는 듯 해요."(‘!느낌표’의 김경화 작가) "오락 프로 만들기 정말 어려워요. 주제가 좋아도 시청률 낮으면 바로 폐지되고 시청률 높아도 저질이다 뭐다 욕먹기 십상이죠."(MC 신동엽)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 내부 압력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외부의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일선 제작진. 그들이 털어놓는 고민에는 오락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이미 검증된 포맷에 인기 연예인을 대거 동원하는 방법을 택하다 보니, 스타 섭외에 돈과 시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신동엽 김용만 등 톱 MC의 회당 출연료가 800만~1,000만원에 이르고, 일부 단골 게스트도 회당 500만원 이상을 요구해 출연료가 제작비의 40~50%를 차지한다. 사정이 이러니 참신한 아이디어 개발을 기대하거나, 프로그램을 좀더 공들여 만들라고 주문하기 어렵게 된다.
◆ 어떻게 풀 것인가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 중심의 오락 프로그램이 당장은 효과를 발휘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을 오래 붙들어둘 수는 없다. 스타 파워가 커지면서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보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홍보수단이 되기 십상이다. 자연,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떨어지고, 공익성을 거론하기에 앞서 오락의 생명인 ‘재미’를 잃게 된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100% 전환을 꾀할 수도 없다. 한국적 정서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제작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딱 부러진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지만, ‘휴먼 리얼리티’의 추구가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장동욱 SBS 예능총괄CP는 "앞으로 오락 프로그램은 감동과 휴머니티를 주면서 연예인 대신 일반인들을 등장시켜 현실감을 최대한 살려주는 방향이 될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2005 좋은 세상 만들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태연 MBC 예능국장도 "버라이어티를 하더라도 최대한 리얼리티를 바탕에 깔도록 주문한다"고 말했다. ‘!느낌표’의 김영희 PD도 "무엇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많이, 꾸미지 않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버라이어티의 ‘원조’격인 일본 예능 프로그램의 80%가 마법 가정의학 요리 등 다양한 생활 정보와 지식을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풀어가는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도 참조할만하다. KBS2 ‘스펀지’의 성공이 좋은 예이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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