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회에 걸쳐 나의 인생사를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 준 한국일보에 감사한다. 솔직히 나의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시간만 빼앗지는 않았는지 두렵기도 하다.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 또한 삶을 돌아보면서 가능한 솔직해 지고 싶었지만 그냥 남겨둔 사연도 적지 않다.만약 사람들이 내게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전력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무엇을 위해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정보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고 대답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나는 정보화를 위한 전도사 노릇을 해왔다. 전도사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기가 믿는 걸 남에게 권하는 게 임무다.
나 자신을 전도사라고 생각할 때 싱거운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괜히 이 동네, 저 동네 기웃거리며 콩 내놔라, 팥 내놔라 떠들고 다녔으니 말이다. 1970·80년대에는 정보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외쳤다. 80·90년대에는 대학 입시에 컴퓨터 과목을 넣어야 정보화 사회를 빨리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0년대에는 정부가 국비로 도로를 포장했던 것처럼, 국비로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깔아 모든 사람들이 공짜로 일정기간 사용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수출산업화해야, 제조업이 경쟁력을 후진국에 빼앗겨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 결정자들에게 역설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나는 97년 6월 소프트웨어 수출 단지인 미디어밸리를 세웠다. 정부한테 아무리 소프트웨어 수출단지를 만들라고 사정해도 반응이 없어 민간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 직접 만들었다. 당시 한 회사 당 9억원 정도 출자케 해서 모두 166억을 모았다. 그리고 지방자치 단체들에게 토지를 제공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지자체들은 열렬히 호응,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다. 그래서 우리는 인천 송도 매립지의 100만평을 인천시로부터 얻어 미디어밸리를 구축키로 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정부로부터의 후원은 끝내 얻어낼 수 없었다. 유치 단계에서는 장밋빛 약속을 내놓았던 인천시도 막상 사업이 시작되자 거북한 요구 조건들을 내걸어, 이 사업은 햇볕도 못 본채 접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정부가 나서 송도를 첨단 사업단지로 만들겠다며 외국계 투자를 모으고 있다. 그때 일을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작정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 교육제도만 반듯하면 이 교육열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소원은 선비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이는 유교의 근대화를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
고희를 넘긴 내 친구들은 거의 다 정년 퇴임해 편하게 지내고 있다. 그들은 나보고 이제는 물러앉아 편히 살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글씨도 쓰고 운동도 하고, 고서도 읽으면서 여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하지만 전도사의 고질병은 끝내 고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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