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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영웅시대’와 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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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영웅시대’와 주한미군

입력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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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의 드라마 ‘영웅시대’는 지난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미국 방문을 다뤘다. 그는 5·16 쿠데타를 마지못해 용인하는 자세를 취한 케네디 정부에서 정통성 추인과 지원을 얻어 내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비판적 미국 언론을 앞에 놓고 "주한미군은 한국 안보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이바지하는 것이다"는 식의 직설적 발언을 거듭, 주변을 당황하게 한다. 김종필 정보부장이 가뜩이나 그의 좌익전력과 민족주의 성향을 의심하는 미국 정부와 여론을 자극할 것을 걱정하자, "임자, 내 말이 뭐 틀린 게 있어?"라고 퉁명스레 면박 줄 뿐 태연스럽다.40여년 전의 실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극중 에피소드는 이병철과 정주영, 두 경제계 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의 곁 가지처럼 비친다. 그러나 개발독재로 불린 역사의 수레를 견인한 주역들의 비범한 현실인식과 전략적 사고를 부각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케네디 정부가 예상보다 쉽게 군사정권을 승인한 것은 신생국가의 우익군부 집권을 부추긴 미국의 냉전 전략에 비춰 자연스럽지만, 이를 꿰뚫어 보고 언뜻 불리한 상황을 정면 돌파한 강단(剛斷)이 새삼 두드러진다.

그 뒤 냉전대치가 고착되고 한미 동맹이 견고해지면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미국의 이기적 국익차원에서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박 대통령은 유신시대에 다시 미국과 갈등하면서 민족주의 성향과 전략적 인식을 표출했다. 그러나 그의 영웅시대는 지나고 있었고, 흔히 민족주의에 기우는 반체제 민주화 세력은 미국의 후원에 기댔다. 이들이 5공 정권을 목격한 뒤에야 극단적 반미로 돌아 선 것은 아이러니다.

다 아는 얘기를 되뇐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 논란이 다시 고비에 이른 듯 해서다. 예전처럼 국내외 정치가 맞물려 나라가 시끄럽고 평범한 국민까지 심란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사의 구비마다 기록한 아이러니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난 경험과 장차 직면할 문제를 냉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에 들어와 주한미군의 존재와 역할에 관해 특기할 변화가 있었다. 한반도 분단도 곧 끝날 듯한 막연한 기대가 높을 즈음,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를 위해 통일 이후에도 긴요하다는 논리가 미국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에도 확산됐다. 이 논리에는 주한미군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 숨어 있었지만, 우리 안보에 이롭다면 복잡하게 따지는 것은 불순하게 여기는 사회는 무심했다. 진보적 이념을 표방한 DJ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진보세력도 정부의 주한미군 정책을 끝까지 시비하지 않았다. 보수세력과의 힘겨루기를 먼저 염두에 둔 탓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동북아 평화유지 역할에 대한 회의와 경고는 오래 전 미국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 중심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최대 가상 적국인 중국과의 분쟁 때, 한국이 중국의 공격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미국 편에 서는 것을 기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일본의 중심기지 역할 강화론으로 이어지는 이런 주장은 언뜻 황당한 듯 했지만,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소홀히 넘긴 전략적 인식을 담고 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는 재배치 움직임에 우리는 대북 억지력 약화를 논란하는 데만 매달렸다. 미군의 한반도 밖 분쟁개입, 이른바 지역역할을 확대한다는 데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야당의원의 폭로로 문제가 불거져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해묵은 대만 문제를 놓고 중국과 미국이 전쟁이야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작은 논란에서도 먼 장래를 내다봐야 한다. 큰 나라들의 움직임을 무작정 뒤좇다 보면 언젠가 낭패하기 십상이다. 미·중 분쟁을 상상조차 않는 이들은 북한이 붕괴할 때 미군과 중국군이 질서유지를 위해 개입하는 문제가 국가적 고민을 안길 것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미국 학자들은 이미 그런 논란을 하고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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