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치의 급속한 하락이 글로벌 차원의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지난달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선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아시아를 겨냥한 사실상 신플라자 합의문을 발표, 미국의 경상적자 축소를 위해 아시아국가들의 평가절상을 촉구하고 나섰다.미국이 달러약세의 원인인 자국 적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미국 적자의 40%는 한·중·일 아시아 3국이 대미상품교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기 때문인데, 이의 상당부분이 환율 저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적자해소를 위해서는 저평가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달러화 가치는 30~40% 절하돼야 하는 만큼 앞으로도 최소한 15% 이상 더 내려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화는 지난 달말 달러당 1,046원으로 전년말 대비 12.6%가 떨어져 일본, 중국, 대만은 물론 EU보다도 빠른 하락속도를 보이고 있다. 원화가 떨어지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극심한 내수침체 속에서도 우리경제를 그나마 지탱해 준 수출이 활력을 잃으면서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환율급락은 경공업분야는 물론 자동차, 선박, 컴퓨터 등 우리 수출주도품목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호조 분위기에 편승, 원화절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원화절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원화절상의 치명성을 간과한 것으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원화절상은 무엇보다도 수출채산성을 악화시켜 수출둔화를 초래하게 된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은 환율부담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지만 원천기술력이 취약한 우리기업이 환율하락분을 수출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정도는 10%에 불과하다. 수출시장은 한번 잃게 되면 회복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더욱이 임금과 노동생산성, 금리, 물류비용 등 수출가격 결정요인들이 경쟁국에 비해 갈수록 불리해 지고 있어 원화절상은 자칫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절상을 통해 내수경기를 적극 부양해야 한다는 논리도 수긍하기 어렵다. 최근의 내수침체는 고용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심리적 요인이 크므로 물가하락에 대한 소비 투자의 탄력성은 매우 낮을 수 밖에 없다. 원화절상으로 수출이 안되면 오히려 소비와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원고(高)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정부는 급격한 원화절상을 막도록 시장의 조정능력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원고가 대세라면 가급적 절상 속도를 늦춰 기업들에 대응 시간을 주는 것(Smoothing Operation)이 중요하다.
기업들도 치밀한 생존전략을 짜야 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설비 및 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해 생산원가를 절감해야 한다. 일본기업이 1985년 플라자합의이후 급속한 엔화절상을 맞아 끊임없는 R&D투자, 특히 부품·소재 분야의 과감한 투자를 통한 고급기술 개발로 엔고를 극복한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를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 등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미래 첨단형 부품소재에 대한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이 지속적인 엔화강세 속에서도 수출경쟁력 우위를 지키고 있는 비결이 부품·소재의 경쟁력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오기현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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