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동포들과 만나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는 유럽식 경제모델에 강한 애정을 표시하며 "유럽식 가치들이 한국의 사고방식과 제도 속에 옮겨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미국식 이론에 너무 영향을 받는 것 같아 걱정이고, 경쟁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회로 가서는 안된다는 등 많은 설명이 뒤따랐다.유례없는 경기침체 속에서 국민들이 매일매일 겪는 고통을 감안하면 이 말이 좀 한가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의 역사적 맥락을 되새겨보는 노 대통령의 뜻은 충분히 이해된다. "연줄이나 반칙을 통해 성공하는 시장이 아니라 창의와 노력, 실력으로 경쟁해 성공하는 시장시스템을 확립하면 한국경제는 반드시 성공한다"며 국민과 기업의 혁신역량을 강조한 얘기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이상향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그 그림을 현실로 실현해 내는 사업체다. 연대와 분배가 중요하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중요성을 느끼고 실천해 나가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고용 생산 투자 소비 소득의 선순환 구조가 끊어진 원인과 대책을 방치한 채 연대를 외쳐봐야 사회적 박탈감과 빈곤만 양산되기 십상이다.
노 대통령과 주변 정책브레인들은 최근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빈민계층이 확대된 것이 영미식 신자유주의 시장모델의 후유증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안으로서 유럽식 모델이 유용성을 가지려면 제도와 의식에 걸친 광범위한 사회개혁이 선행되고 물적 기반도 충족돼야 한다.
지금은 그 같은 장기적 과제보다 빈사상태의 경제를 직시하며 가진 자, 못가진 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불안과 불만을 토해 내는 이유를 따지고 처방을 내놔야 한다. 가진 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회적 연대는 공허한 슬로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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