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12월7일 미국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법이라 불리는 언어이론의 창시자이자,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급진적 정치철학으로 미국 대외정책을 어기차게 비판해온 정치평론가다. 언어학자 촘스키와 정치평론가 촘스키는 이미 1960년대부터 한 몸이었지만, 한국의 지식사회와 독서계는 이 둘을 분리해 순차적으로 소비했다.우선 1980년대 중엽까지 한국에서 촘스키는 오로지 언어학자였다. 그의 생성문법은 대학의 영문학과와 언어학과를 휩쓸며 전통적 구조주의 언어학을 몰아냈지만, 혜안의 정치평론가 촘스키는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반면에 1990년대 이래 촘스키는 한국에서 언어이론가의 모습을 크게 잃어버리고 오로지 정치평론가로서만 소宙품?있다. 특히 세기말을 전후해 촘스키의 정치에세이와 대담들이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미국의 이라크전쟁'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불량국가' ‘권력과 테러' ‘테러리즘의 문화' ‘전쟁에 반대한다' ‘숙명의 트라이앵글'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미국의 제3세계 침략전쟁' 등의 제목을 달고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 독서계에서 촘스키는 세계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견결한 지식인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20세기 인문학에 거대한 혁명을 이뤄낸 언어학자의 면모는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촘스키의 진정한 모습은 그 둘의 총합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대인이자 미국인이면서도 이스라엘의 팽창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를 가차없이 비판하는 지식인 촘스키의 매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지성사는 촘스키를 다른 무엇에 앞서 생성문법의 창시자로 기록할 것이다. 자연언어의 심층구조 탐색에 시동을 건 기념비적 저서 ‘통사구조론'(1957) 이래 촘스키 언어학은 수세기 동안 잠자고 있던 데카르트를 깨워내고 포르루아얄 문법학파를 복권시키며 이성주의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