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제 이름은 폴’이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그건 당신 몸의 이름이다.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다’고 하셨습니다."현각스님(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장)은 다비식이 있기 하루 전인 3일 수덕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숭산스님의 큰 뜻과 행적, 인연의 한자락을 펼쳐놓았다.
숭산의 수제자로 통하는 현각스님은 1990년 5월 하버드대학원 대강의실에서 열린 숭산스님의 특별강연에 매료돼 한국 선불교에 입문했고, 99년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 발행)라는 책을 써 숭산스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서툰 영어였지만 그 날 스님께서 주셨던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라는 가르침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외국인 제자들은 숭산스님의 법력이 워낙 대단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베풀어주신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현각스님의 설명은 명쾌하다. "스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처럼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통해 너희들 자신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라’고 말씀하셨죠. 스님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진정으로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원하셨던 겁니다."
숭산스님은 25년 전부터 해외포교에 나서 32개국에 120여개 선원을 열었다. 때문에 그의 빈 자리가 너무 넓어 해외선원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각스님은 "숭산스님의 해외 포교는 현지 선원을 이끌어갈 지도자, 곧 후계자를 양성하는 과정이었다"며 이런 걱정을 일축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 ‘걱정하지 마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도 너희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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