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진퇴를 놓고 미국과 유럽이 첨예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프랑스와 독일은 2일 아난 총장 공개지지를 확인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아난 총장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우의를 과시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도 "아난은 훌륭한 유엔 사무총장"이라며 모처럼 미국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지지 표명은 미 정계와 언론이 유엔의 ‘오일 스캔들’(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비리) 책임을 물어 아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한 이후 나온 것이다. 미 정부는 이라크 전에 엇박자 소리를 내는 아난 총장의 신임결의를 거부하는 등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다. 놈 콜리먼(공화당·미네소타) 미 상원의원은 1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이번 사건은 유엔 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라며 "아난 총장이 물러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 언론은 아난 총장의 아들 코조 아난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기업에서 불법적인 돈을 받은 사실을 폭로, 아난 총장의 유감표명을 받아냈다.
그러나 아난 총장이 낙마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강제 사퇴시킬 법적 근거가 없고, 다른 대안인 사퇴 결의안도 채택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아난 총장도 이날 프레드 에커드 유엔 대변인을 통해 "사임을 요구한 회원국은 아직 없으며, 남은 임기를 마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난 총장에게 오일 스캔들은 유엔 위상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이 비리조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어 언제 다시 도덕성에 흠집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직접 그의 퇴진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모든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유엔의 신뢰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번 카드를 아난 총장의 퇴진보다는 그를 적절히 제어하는데 사용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석유ㆍ식량 프로그램은 이라크 주민지원을 위해 1996년 12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유엔 감시하에 식량 구매용 석유판매를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를 이용, 비자금을 조성했고 유엔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미 의회가 조사에 나섰다. 비자금 규모는 처음 30억 달러에서 현재 2배로 늘어나는 등 점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조사소위를 이끄는 콜리먼 의원은 "유엔의 비협조로 조사가 마비된 상태"라며 아난 총장을 계속 겨냥하고 있다. 가나 출신인 아난 총장의 임기는 2006년 12월에 끝난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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