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모르던 아이가 자라면서 돈의 힘에 눈뜨는 순간이 있다.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생기고, 돈을 주면 그것들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는 때다. 일단 돈의 힘에 눈뜨고 나면 아이는 조금씩 돈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게 된다.인간의 역사에서 화폐가 언제 등장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득한 옛날부터 어떤 형태로든 화폐가 쓰여왔음은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뚜렷이 알려주고 있다. 돈에 대한 인간 욕망의 변화사도 아이가 돈에 눈떠가는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화폐를 매개로 한 상품교환은 처음에는 당사자의 구체적 수요에 의해 행해지지만 교환이 습관적ㆍ사회적으로 반복되다 보면 수요가 오히려 교환에 의해 고정된다.
이제는 교환의 대상이 될 만한 물(物)이라는 이유로 수요가 생기고 그 때문에 물을 생산하게 된다. 인간은 교환을 통해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 물을 생산하게 되고, 추상화된 사회적 수요의 총체인 화폐가 인간의 욕망을 좌우한다.’
■ 간단히 이해하면 애초에 상품교환의 매개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화폐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상품이 됐다는 말이다. 더욱이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기축(基軸) 상품’이란 점에서 화폐는 인간의 욕망을 끌어 모은다.
문명사가들은 서구의 화폐상품경제가 발달 초기에 기독교 사상과 크게 충돌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가 인간에게 욕망을 억누르고 양심을 갖게 한 근원적 힘이었는데 화폐라는 새로운 ‘신적 존재’가 그 양심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 그것이 수 백년 전의 이야기이니 고도산업사회 단계에 접어든 한국에서 벌어지는, 돈을 향한 욕망의 분출이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경제적 욕구 이외의 다른 사회적 욕구마저 돈의 힘에 뒤덮여 가는 모습은 눈에 설다.
우수한 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의대나 한의대로 몰리고, 많은 주민운동이 집값 변동에 대한 우려 또는 기대로 들끓는다. ‘똥파리는 똥을, 인간은 돈을 좇아 몰린다’는 노래마냥 실소로나 끝내기에는 돈의 힘이 너무 크고, 거기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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