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까페, 영화 ‘말아톤’(감독 정윤철, 내년 1월말 개봉 예정)의 주연 조승우(24)가 초등학교 시절의 짝꿍 세연과 만나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유치원생 같은 말투, 엄마역으로 호흡을 맞추는 이미숙이 "너무 귀엽다"고 평할 정도다. "기억나요. 동물백과. 357종의 동물. 올 칼라 어린이 동물백과. 3학년 2반 25번 세연이. 초원이 짝꿍 세연이가 줬어요. 세연이 보고 싶어."그 렇게 보고 싶어 하던 짝꿍 세연이를 만났지만 단 한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잔뜩 웅크린 채 바닥만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다. ‘말아톤’에서 조승우가 연기하는 초원은 스무 살이지만, 다섯 살의 지능을 지닌 자폐아다. ‘말아톤’은 초원이 일기장에 ‘마라톤’을 잘못 쓴 것. "그런데, 자폐아(自閉兒)가 아니라 자개아(自開兒)더라구요. 생각은 다섯 살처럼 하니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고 열려 있겠어요."
영화 속 초원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끈은 마라톤이다. "마라톤 마니아들도 ‘처음에는 100m도 못 뛰었다’는 분 많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죠." 촬영을 준비하며 조승우는 집 근처 양재천에 나가 매일 8㎞씩 뛰었다. 이제는 마라톤 장면을 촬영할 때 오히려 답답하다. "아, 땀이 좀 날만 하면 ‘컷’ 하시잖아요."
영화는 ‘인간극장’(KBS2)에 소개된, 배형진(23)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폐아인 형진씨는 엄마의 도움으로 마라톤을 시작, 42.195km를 완주해 감동을 안겨줬다. 정 감독은 형진씨와 같은 마라톤클럽에 가입해 1년 간 그를 관찰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조승우는 10월 배씨와 함께 강화 해변마라톤에 참가해 10㎞를 뛰기도 했다.
2004년, 영화 ‘하류인생’으로 베니스영화제도 갔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해 기쁜 일이 줄을 이었던 한 해였다. 현재 85% 가량 촬영이 끝난 ‘말아톤’을 마치면 그는 24일부터 ‘지킬 앤 하이드’의 앵콜 공연에 들어간다. 이미 조승우가 출연하는 날짜의 좌석은 거의 매진됐다.
천진한 모습의 조승우를 보자니, ‘눈빛이 관객을 빨아 들인다’는 평을 듣는 뮤지컬 무대의 그와 촬영장에서의 조승우가 다른 사람인 듯한 착각까지 든다. "영화와 뮤지컬의 비교요?" 몸에 익은, 다섯 살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몇번 갸우뚱 하던 그의 답은 다소 심심하게도 "어차피 저는 연기자고 큰 차이점은 모르겠어요"다. 워낙 그의 꿈은 뮤지컬 배우였고, "영화 ‘춘향뎐’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영화배우로의 길이 먼저 열린 것 뿐"이라고 덧붙인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에도 여전히 어수선한 촬영현장. "임권택 감독님 작품 할 때는, 물론 배려해 주시지만 사실 감독님을 피해 다녔어요. 하하. 너무 어르신이잖아요. ‘말아톤’ 촬영장은 자유로운 분위기라 편해요."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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