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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능과 지역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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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능과 지역감정

입력
200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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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중략…/아아 통곡뿐인 남도의/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중에서) 시인 김준태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좌절이 아닌 희망을 보았다. 그가 ‘영원한 청춘의 도시’라고 노래했던 광주는 지금 비탄에 잠겨 있다. 오죽하면 수능 부정사건을 ‘5·18 이후 가장 큰 충격’이라고 자조할까. 고통과 아픔이 그만큼 크다는 비유다.■ 예(禮)와 의(義)의 도시, 교육도시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광주에 물결친다. 소설가 송기숙씨와 문병란 교수, 최창무 대주교, 조비오 신부 등 지역의 원로들이 어제 "광주를 ‘원칙과 정도로 바로 선 도시’로 바꿔 나갈 것"이라며 범지역적 윤리회복 운동을 선언했다. 광주시 교육위원들과 고교 교장단도 사죄문을 냈다. 대입 면접이나 취업 등에서 후폭풍을 걱정하는 것은 눈 앞에 닥친 현실이다. 다급한 심정에 고교 교장과 학부모 등 300여명으로 비상대책반을 꾸려 서울 등 수도권의 대학을 찾아가 공정한 평가를 당부하기로 했다.

■ 광주 시민들을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지역감정이라는 악령이다. "커닝 능력이 뛰어나 기쁘겠다" "광주에서 일 날 줄 알았다"는 등 광주 전체를 매도하는 글이 인터넷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광주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는가’라는 설문조사까지 하는 판이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의 발언은 기름을 부었다. "광주학생들의 놀라운 조직력은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며 수능 부정사건을 광주학생운동과 남총련에 빗댔다. 공개사과와 대변인직 사퇴로 일단락됐지만 민노당에까지 전염된 정치인의 막말이 놀랍다.

■ ‘왜 광주에서만’에서 비롯됐던 이 모든 일에서 광주가 ‘누명’을 벗게 됐다. 휴대폰을 이용한 수능 부정이 광주 외에 서울 전북 충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저질러진 것으로 확인된 때문이다.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이를 반겨야 하는지, 안타까워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특정지역을 거론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걸핏하면 우리를 찢어놓는 지역감정이라는 게 결국은 실체 없는 허상으로 드러나지 않는가.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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