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든 국가든 살림살이를 짜임새 있게 꾸리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헌법상 예산안 의결 기한 2일을 코 앞에 둔 지금에야 겨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를 시작한 상태여서 예결위원으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헌법에서 새해 30일 전까지 예산을 확정토록 한 것은 행정부에 준비기간을 주어 연초부터 예산이 차질없이 집행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행정부에서 오래 일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선 사실 이 기간도 빠듯하다.따라서 국회에서 예산이 늦게 확정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예컨대 일자리 창출사업의 경우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는 1~2월에 예산이 집중 집행돼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중앙정부 총예산의 약 40% 정도는 지방자치단체, 정부산하기관, 투자기관, 출연기관 등에 교부되는데 이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회에서 예산이 늦게 확정되면 지자체는 예산 계획에 중앙정부 예산 확정액을 반영할 수 없어 통상 5~6월 개월의 집행기일 차질이 발생한다. 정부 출연·산하 기관은 이듬해 2~3월경 가서야 이사회를 다시 개최하여 예산을 집행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연말 이월액을 과다하게 발생시키게 되는 등 예산의 비효율적인 집행 원인이 된다.
예산은 민생의 기본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헌법상 시일이 지켜져야 한다. 해를 넘겨서 심의를 하겠다는 등의 얘기는 민생경제를 책임져야 할 국회로서는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행정부는 한번도 헌법상 예산안 제출 기한을 어긴 적이 없는 반면, 국회는 헌법상의 예산안 확정 기한을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의원들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국회의원 선거 내용을 새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17대국회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을 반영,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꿈을 안고 탄생했다. 그만큼 참신한 신인들의 진출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회의 현주소는 어떤가? 민생과 직결되는 예산심의에는 관심이 없고 과거처럼 예산심의 자체가 정쟁의 볼모가 되어왔다. 올해도 이미 기일 내 예산안 통과는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동력을 제 때 제공함으로써 민생을 살리고, 국민들에게 과거 정치권과의 다른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이시종 국회의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