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18년 12월1일 발칸 지역의 남슬라브인들(슬라브어로 유고슬라브)이 베오그라드를 수도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을 출범시켰다. 이 왕국은 그 전부터 독립해 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비롯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해있던 남슬라브족 영역 대부분을 단일한 주권 아래 묶어냈다. 남슬라브족의 통일국가가 역사상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0년여 뒤인 1929년 1월 국호를 유고슬라비아왕국으로 바꾸게 될 이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이 첫 번째 유고슬라비아다.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게 유린되며 지도 위에서 사라진 이 첫 번째 유고슬라비아는 전쟁이 끝난 뒤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두 번째 유고슬라비아로 부활했다. 이번〈?왕국이 아니라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었다. 두 번째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의 여섯 개 공화국에다가 세르비아공화국 안의 자치주 둘, 곧 코소보와 보이보디나를 더해 여덟 개 정치행정단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시동을 건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이내 유고슬라비아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91년 6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시작된 연방의 해체는 지역에 따라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수반하며 진행됐고, 결국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을 이름뿐인 연방 안에 남겨놓은 채 다른 공화국들은 모두 독립국이 되었다. 특히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전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부의 세르비아계와 이슬람계 사이의 내전, 코소보 자치주 내부의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의 분쟁은 90년대 유럽을 포연으로 뒤덮었다. 얄궂은 것은 유고슬라비아를 탄생시킨 것이 민족주의였듯, 그것의 해체도 민족주의를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