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가 중복 대출을 받고, 해외이주자가 고의적으로 대출금을 떼먹는 등 은행 신용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5~7월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 4곳과 관련 기관에 대해 ‘기업여신 신용평가시스템 운용 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감사결과를 토대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과 해당 은행장 등에게 주의 촉구 등의 조치를 내렸다.감사결과 은행들의 담보위주 무작위 대출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2001년 하반기 부동산업 숙박업 음식접업 등에 대해서는 신용평가를 생략하고 42억원까지 담보 대출을 취급할 수 있도록 여신 정책을 세웠다. "중소기업, 소호(SOHO) 대출시장에서 획기적인 대출증가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취지였다. 심지어 ‘압류 13회, 타금융기관 23억원 장기 연체’ 등의 딱지가 붙어있는 모텔업체에 26억원의 신규 담보 대출을 버젓이 해주기도 했다.
그 결과 중소기업 대출 중 제조업 대출비중은 2001년말 45.9%에서 올 6월말 28.4%로 급락한 반면, 부동산·숙박·음식업 등 특수업종 대출 비중은 이 기간 13.3%에서 30.5%로 폭등했다.
통계방식 변경으로 ‘착시 효과’도 초래했다. 기업대출(원화) 중 신용대출 비중은 실제 45.3%(2001년말) →43.1%(2002년말) →42.1%(2003년말)로 하락하는 추세였지만, 금융감독원은 같은 기간 41.2% →45.5% →45.7% 등으로 상승하며 신용 중심 대출로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공표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총대출 중 담보대출 비중을 2002년6월 이후 융자 비율에서 담보물건의 경락률로 변경하면서 의도적으로 신용대출 비중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뒤 해외로 이민을 가는 이른바 ‘먹튀 이민’의 실태도 낱낱이 드러났다. 감사 결과 1998년부터 올 2월말까지 외교통상부에 해외 이주 신고를 한 7만4,695명 중 신용불량자는 5.9%(4,431명). 이들의 금융기관 대출금은 총 6,341억원에 달했다. 특히 이중 2,789명은 해외 이주 신고 후 1년 이내 출국하면 되는 현행 제도를 악용해 고의적으로 대출금(2,362억원)을 상환하지 않고 출국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주민번호 바꾼 신용불량자 4,058명에 1,195억 대출
이번 감사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통한 신용불량자 등의 대출 신청에 은행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점이다. 법무사 A씨는 국민은행에서 1억1,500만원을 대출받은 후 신용불량자가 되자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다시 같은 은행에서 6,400만원을 대출받았다. A씨는 무려 4차례에 걸쳐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며 금융기관에서 총 3억8,700만원을 대출받았고, 이중 단 1,500만원만 상환했다.
A씨가 이처럼 주민등록번호를 수시로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행정기관과 금융기관 사이에 개인 신용정보 교환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1998년부터 올 5월까지 법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한 신용불량자는 총 7,578명으로 이중 4,058명이 새 주민번호로 금융기관에서 1,195억원의 신규 대출을 받았다. 감사원은 또 옛 주민번호와 새로운 번호를 번갈아 사용하며 금융기관에서 중복 대출을 받은 이들도 2,999명에 달한 것을 확인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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