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 이어 두번째인 싱가포르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경제적 실리보다는 상징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싱가포르의 인구와 내수시장 규모, 통상시스템을 고려하면 FTA 체결로 양국간 무역이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장기적으로 ‘한·중·일+아세안(ASEAN) FTA’ 등 18억 인구를 단일 시장으로 묶겠다는 우리 정부 ‘그랜드 플랜’의 첫 단추가 채워졌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싱 FTA’ 타결이 제조업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반도체, 무선통신, 석유제품, 선박 등을 중심으로 46억달러 가량을 수출했으나, 대부분 이미 무관세로 수출됐다. 따라서 FTA 타결로 관세가 낮아져 수출이 늘어날 여지는 별로 없다.
이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가 해외에 수출하는 제품의 40~50%는 자국산이 아니라 다른 나라 제품을 받아 중계무역하는 재수출 방식이다. 따라서 국내 수입관세가 인하되더라도 싱가포르로부터의 수입규모가 갑자기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싱가포르는 전통적으로 농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산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 동남아 저가 농산물의 우회 수입만 차단한다면 국내 시장에 주는 충격도 미미할 전망이다.
‘한·싱 FTA’를 통해 정부가 변화를 기대하는 분야는 서비스 및 투자 부문이다. 싱가포르는 금융 운송 통신·상업서비스 부문에서 우리나라보다 한 수 위다. 실제로 제조업 보다는 양국 간 서비스부문 자유화를 통해 싱가포르의 선진기법을 습득하고, 우리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삼는다는 게 우리 정부의 협상 목표였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한·싱 FTA’는 아세안과의 FTA 추진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 정부는 일본, 중국과 FTA를 체결한 뒤, 아세안까지 묶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동남 아시아의 국제비즈니스 센터이며, 약 6,000개의 다국적기업이 활동 중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싱 FTA’를 교두보로 삼아 동남아 시장 진출기반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국과 싱가포르가 개성 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키로 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우리나라 기업은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을 남한에 무관세로 반입한 뒤 다시 특혜관세만 물고 싱가포르에 수출하는 길이 열리게 됐다. 우리 기업들로서는 개성공단제품의 주요한 해외판로를 최초로 확보한 셈이다. 장기적으로 개성공단의 성패 여부는 해외시장의 확보에 달려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해왔다. 앞으로 다른 나라들과의 유사한 협상에서도 이번 사례가 원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