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의 최고 스타 이원국(37)이 국립발레단을 떠난다. 10월 1일로 지도위원을 그만뒀다. 국립발레단의 연말공연 ‘호두까기 인형’ 중 하루 공연(12월 26일)이 그의 고별 무대인 셈이다. 은퇴는 아니다. 프리랜서로 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 왕자로 나왔던 ‘영원한 왕자’ 이원국을 떠나보내는 팬들의 마음은 한없이 서운하다.유니버설발레단에서 보낸 3년을 합쳐 발레단 생활만 11년, 이 시기는 곧 한국발레의 중흥기이기도 하다. 그 한복판에 그가 있다. 이원국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빼놓고는 한국발레의 오늘을 말할 수 없다. ‘한국 남성발레의 교과서’로 불리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한국 남성발레의 역사를 ‘이원국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그만큼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아쉬움은 있지만, 떠났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계속 춤출 테니까. 지도위원으로 있었던 지난 1년 반 동안에도 제 본질은 무용수에 가까웠어요. 춤추면서 얻는 기쁨과 깨달음이 제게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제 안에 그런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발레단을 떠난 무용수는 극소수가 아주 가끔 무대에 설 뿐 대부분 활동을 접는 것이 국내 실정이다. 계속 춤출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계속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공연으로 먹고 살겠다는 이원국의 프리랜서 선언은 없던 길을 만드는 도전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요. 거창한 꿈도 있지만, 우선 소규모 그룹으로 내년 3월 한달 간 지방순회공연을 하려고 합니다. 좋은 무용수들을 모아서 고전발레의 몇 장면과 모던발레를 각색한 작품을 올리고, 제가 안무한 습작도 선보이려고 합니다. 발레관객은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해요. 전막공연이 아니더라도 무대만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발레의 맛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안무가와 함께 작업을 하고, 저 자신을 위한 춤도 만들고 싶어요."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는 발레 무용수로서는 체력적으로 내리막이다. 힘만 갖고 춤 추는 것은 아니지만, 힘찬 도약이나 회전 등 고난도 기교나 전막 발레를 소화하기는 버거워진다. 국립발레단의 최고참 무용수로, 후배들의 귀감이자 팬들의 우상으로 부동의 자리를 지킨 그가 계속 춤출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 힘이 아직 국내 직업발레단에는 없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것도 계속 춤추기 위해서다. "불러주는 데가 없으면 직접 공연을 만들어서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보니 일단 자유롭다"고 했다. 그 자유가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막연히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부닥칠 이런저런 현실적 문제에 대한 걱정보다는 기대와 의욕이 더 크다는 표정이다.
"발레단 생활은 무용수로서는 영광이고 생의 절정이지만, 발레 무용수의 무대 수명은 너무나 짧아요. 은퇴 후 삶은 아무런 보장도 없지요.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발레에 모두 바치는 그 열정만으로도 발레 무용수들은 칭찬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는 발레단을 애정어린 눈길로 지켜봐 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발레단을 떠나 제2의 무대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도 바로 그럴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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