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의원 K씨의 충격적인 고해를 들었다."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진다"는 탄식으로 시작된 그의 고백은 4·15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듣는 사람마저 통증을 느껴야 했다.
"거물을 이기고 당선돼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10여년 동안 나를 돕던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축하 전화인줄 알고 얼른 받았다. 그는 ‘정치판을 떠나야겠다’고 했다. 만류했으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떠나는 마당에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했다. 무슨 회견이냐고 묻자 ‘선거운동 중 의원님으로부터 받은 돈이 양심에 걸려 고백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에 둔기를 맞은 듯 아득했다."
K의원은 형편이 어려운 그가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는 게 고마워 친지를 통해 소액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가시가 된 것이다. K의원은 배신감을 느꼈지만 지인을 보내 설득했다. 다행히 그는 최고 5,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선관위 신고 대신 조용히 떠났다.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 설득하러 갔던 지인이 찾아왔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며 "떠나기 전에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지인도 조용히 이사 갔다.
두 사건이 있고 난 후 K의원은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일인 10월 16일까지 지역구를 가지 않고 국회에 주로 있었다. 지역구에 갔다가 누군가로부터 "떠나는데 회견을 해야겠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였다.
이런 일은 K의원만이 겪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의원들이 "유급운동원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협의회장에게 아무 것도 안 해주면 도리가 아니고, 뭔가 주고 나면 다리 뻗고 잘 수가 없었다"고 실토한다. 후보자에 의도적으로 접근해 차비 등을 받은 뒤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선관위가 지불한 포상금이 70여명에 6억원 정도였으니 숨겨진 사건들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후보자들이 시달렸을 지 짐작이 간다.
이런 신고는 인간 정리(情理)로 볼 때 배신이고 밀고다. 그러나 아무도 신고포상제를 없애자고 말하지 못한다. 그 순간 선거개혁에 반대하는 구악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정치개혁 특위가 열렸다. 선관위는 특위에 "선거법이 너무 복잡해 선거운동을 위축시킨 면도 있다. 돈은 묶되 말을 푸는 방안을 고려하자"는 의견을 냈다. 선관위만 아는 복잡한 선거법을 손댄다고 하니, ‘돈 안 드는 선거’의 틀을 지키면서 비정한 배덕(背德)의 풍토를 권장하는 조항들도 다소 손을 보면 어떨까 한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