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툴루즈 로트렉’으로 불리는 서양화가 손상기(1949~1988). 서른 아홉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천재화가라는 평가에다가 짧고 불우한 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 살 때 구루병을 앓아 평생 곱사등을 짊어져야 했던 그에게는 늘 죽음이 가까이 있었고 숙명처럼 가난이 따라붙었다. 12월3일~1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낙타, 사막을 건너다’전은 16년 전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생애와 그가 남긴 600여점의 작품세계를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사후 3년에 한 번 꼴로 회고전이 열렸지만, 이번 전시는 전작도록 발간 기념전으로 마련돼 가장 규모가 크다. 생전에 손씨가 전속계약을 맺었던 샘터화랑이 주관, ‘공작도시’ ‘시들지 않는 꽃’ ‘인물 누드’ 연작 등 80년대 유화 150여 점과 고향 여수를 중심으로 지방작가로서 활동하던 초기 유화 소품 50여점, 판화 20여점, 스케치 50여점을 모았다.
"생채기 난 내 꿈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에서 꼭 그리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나의 모습을, 상실이 빚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어떤 것에서 헤어나기 위해 고함지르는 나의 모습을 화면에 욕심껏 표현했다"는 손씨는 작가 개인과 민중의 어두운 아픔을 그렸다. ‘시커먼 그림’을 그린 화가로 기억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유화는 짙은 고동색과 회색, 도시의 냉기를 표현하는 청색으로 그득하다.
1979년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현동 굴레방 다리 근처 화실에 자리잡은 손씨는 도심 속 변두리 삶을 통해 현실 비판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공작도시’ 연작은 빈부의 격차로 파악되는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과 신기루 같은 찰나적 상업문화에 대한 고발로 읽혀진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달동네의 높고 가파른 축대와 계단, 낮은 지붕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경제성장에서 배제된 빈민들의 신산하고 고독한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외로이 어둠을 밝히고 서있는 가로등, 밤하늘 달빛을 가린 도심의 교회 십자가들, 화려한 고층빌딩과 대비를 이루는 난지도도 등장한다. 난지도의 여름을 그린 ‘성하(盛夏)’에서는 여름철 풍경이라면 당연히 등장했을 신록을 찾아볼 수 없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와 판잣집들만 눈에 띄고, 늦가을 풍경처럼 고동색을 주조로 을씨년스럽고 옹색하다.
‘시들지 않는 꽃’ 연작은 다분히 반어적이다. 이미 꺾이고 시들어 말라버린 꽃을 통해 더 이상 시들거나 마르지 않고 영원히 가리라는 작가 자신의 의지를 암시하는 작품. 풍경화 ‘자라지 않는 나무’도 자라지 않는 자신의 키와 불구를 비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체를 비관하는데서 한걸음 나아갔다. 시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그는 이렇게 토해냈다. ‘명산의 바위처럼 위용 있게 돌출된 가슴뼈/ 외봉 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 미치는 키/불쌍하다 가엽다, 그가.’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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