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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수능부정 사태' 원인과 해결책 전문가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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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수능부정 사태' 원인과 해결책 전문가 좌담

입력
200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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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폰을 이용한 대규모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26일로 1주일을 맞았다. 안병영 교육부총리와 시·도교육감들이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부정행위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대리시험 등 다른 형태의 부정행위까지 속속 밝혀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경양 회장, 서울대 백순근 교수(교육학), 인천 계산여고 유현정 교사가 26일 오전 한국일보 4층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갖고 원인분석과 해결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수능 부정행위로 사회가 들끓고 있습니다.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박경양 회장=고교등급제도 마찬가지지만 (수능 부정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고교교사나 교육 관계자들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물 밑에 잠겨 있던 부분이 드러난 것 뿐이지요. 수능 부정 학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누가 모의하고 있는지 신원을 확인하고 있었고, 교육청에도 수차 경고했으며 교육부도 대책회의를 가졌습니다. 결국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교육부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수백명의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일이 터진 뒤에 호떡집 불 난 듯 떠드는 것같아 안타까워요.

백순근 교수=이런 조직적, 체계적 부정행위나 대리시험이 하루 아침에 생긴 일은 아닙니다. 오래 지속되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세계가 노출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오히려 일부 학생들이 운이 나빴다고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일부 언론이나 독자들이 "그 놈 참 운이 나빠서 걸렸구나"하는 동정 같은 것도 보이는데 그런 보도는 자제해야 합니다.

유현정 교사=우리가 인성교육을 강조해왔지만, 현장에서 보면 인성교육이 선언적 의미에 그친 것 같습니다. 학교현장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교육해왔습니다. 사회는 학벌 위주, 수능 위주의 교육을 원했습니다. 예방적 측면에서 접근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우게 돼 안타깝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우리 교육을 바로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수능 부정행위 사건을 놓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교육부총리의 형식적 사과, 사후약방문식 처방 등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요.

백 교수=어떤 일이든 책임에 앞서 자율과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수능은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가르칠 대학이 주관해서 실시하면 책임도 대학이 지게 될 것입니다. 시험관리감독이 제대로 안됐다는 지적을 하는 것은 이해관계가 별로 없는 쪽에서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감독교사들은 자신들이 동원됐다고 생각합니다. 동원된 사람들이 얼마만큼 성심성의껏 감독을 하겠습니까. 부정행위를 방지하지 못하면 피해를 보게 될 대학이 관리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박 회장=교육부총리의 사과담화문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교육부는 학부모, 교사, 학생들을 상대로 자정운동을 벌이기 전에 책임을 통감해야 합求? 우리 사회에서 수능 부정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수능을 ‘로또시험’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이 시험 앞에 커닝 유혹을 받지 않겠습니까.

-수능시험 당일 감독을 한 교사들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유 교사=시험 전날 교사들은 감독 등에 관해 교육을 받습니다. 수능도 교육의 한 부분입니다. 사고를 저지르지 않도록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하는 것도 교육서비스의 일종입니다. 감독교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내가 잘못 가르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하는 도의적 책임은 느끼지만 이번처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부정의 경우엔 색출하기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학생들의 부정행위는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수능이 끝나면 학생들이 왜 선생님한테 생활지도를 받느냐고 합니다. 결국 교사들 뒤에는 수능이란 커다란 힘이 학생들을 통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능의 힘’을 배제한 상태에서 학생들의 원초적 도덕, 윤리의식을 끌어낼 수 있는 교육이 돼야 합니다.

-지난 수능에서도 복수정답 및 출제위원 시비로 교육부장관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경질된 바 있습니다. 1년 사이에 수능시스템이 또 무너진 꼴입니다. 차제에 수능 제도를 새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백 교수=국가가 관리책임을 갖는 한 교사동원이 계속될 것입니다. 대학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성적대로 줄세워 대학 앞에 보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수능 관리책임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이 맡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감독도 대학이 고용한 감독관이나 교수에게 맡겨 문제가 생기면 대학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매우 관료적인 일본이나 자율성이 보장되는 미국도 학생선발은 100% 대학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박 회장=수능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수능의 핵심적 기능은 대학측에 학생 선발 편의를 제공하고 학부모 및 학생이 승복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를 제공하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그러나 수능은 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변별력 운운하지만 수능이 능력있는 학생들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합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인성교육이 실종되고 지식교육만 남았습니다. 수능제도 자체가 중고교 공교육을 대학입시에 종속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 교사=수능으로 인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무시되고 편협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역동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수능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순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성교육도 역동적인 가운데 드러나는 아이를 봐야 합니다. 개방적인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가치가 드러나게 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수능체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수능은 자격고사제 개념정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본고사처럼 대학에 자율적인 권한을 줘 학생들이 심도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수능점수 한 가지로 재단하지 말고 그들이 자신을 보여주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수능 시스템을 보완할 만한 특별한 대안이 있을까요.

백 교수=수능 폐지는 또 다른 수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수능을 전문화, 특성화해야 합니다. 전문화는 체육에도 각 종목의 전문성이 있듯이 각 교과를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수능은 하루에 올림픽 전 종목을 치르는 꼴입니다. 선택형 시스템은 제대로 된 영역 평가에 부합하지 않는 시험입니다. 교수, 교사, 사회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특정 영역 9개 과목 중 네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고시처럼 획일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 회장=수능문제는 논리나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쉬운 길이 있으면 굳이 어려운 길로 가려 하지 않습니다. 수능은 학생 선발에 매우 쉬운 방법입니다. 대학이 인재 선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학교특색이나 과에 어울리는 학생을 뽑기 위해 고민해온 것이 아니라 쉬운 방법만 고민하다 보니 본고사 얘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의 핵심은 전공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육성입니다.

유 교사=문제은행식으로 매월 토익식 시험을 치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우리 현실에서는 상당수 학생들이 모든 시험에 다 응시하려고 들겠지만 적어도 몇 번의 시험을 거쳐 편안한 가운데 얻은 성적 중 가장 좋은 성적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능을 포함한 대입제도의 개선 못지 않게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와 대학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박 회장=대입에서는 학생이 학교교육에서 어떤 과정을 밟았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수능 때문에 대학이 학생선발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있어요. 필요 이상의 기능을 하는 이 잣대를 치워보는 건 어떨까요. 점수대로 서열화하는 시험은 서열대로 뽑고 싶은 대학들의 욕심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백 교수=대학교수 입장에서는 학생을 선발할 때 자신의 뒤를 이어 공부할 학생인지를 전제하고 바라봅니다. 입학은 어려워도 졸업은 쉽다는 부분에 대해 대학이 자성해야 합니다. 학사과정의 엄정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신입생 모집도 단과대학보다 관련 전공별로 이루어지고 전공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7차 교육과정 적용에 따라 고 2~3년 때 자신의 소질 및 적성을 개발해 전공 기본을 갖춘 뒤 대입과 연결되게 해야 합니다.

유 교사=고교 과학 과목의 경우 선택1, 2가 있지만 입시에서는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과 학생들조차 분량 많고 어려운 수리 ‘가’형을 선택하지 않아요. 명문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수리 ‘나’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대학이 공교육의 내실화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대입전형은 대학과 고교가 면밀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연계를 협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백 교수=400개의 대학 중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 많은 학교가 모여 전형문제를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학의 그룹화, 특성화가 필요합니다. 정말 프로를 키우는 대학과 아닌 학교들의 그룹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정리=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박경양 회장(46)

감리교신학대졸

전국지역아동센터 공부방협의회 공동대표

학교법인 동인학원 이사장

참교육 학부모회 회장

▦백순근 교수(43)

서울대 교육학과 졸

미국 UC버클리대 박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유현정 교사(39)

전북대 화학교육과 졸

인하대 교육학 박사

인천 계산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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