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팔레스타인 민중의 영웅 마르완 바르구티(45·사진)가 25일 자치정부 수반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1, 2차 인티파타(봉기)를 주도해 반(反) 이스라엘 투쟁의 상징적 존재인 그는 2002년 이스라엘군에 체포됐지만, 만일 옥중 출마만 가능하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란 평을 받는다. 영국의 BBC방송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뉴스는 이날 "과격 분자에서 평범한 주민까지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그는 9월 여론조사에서 22%의 지지로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집권당인 파타운동이 25일 옹립한 유력한 경쟁자 마흐무드 압바스(69)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의 지지율은 5%도 안됐다.
바르구티의 출마 선언은 아라파트의 권위로 지탱해온 팔레스타인 집권 세력의 대 분열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권부는 1994년 망명 생활을 접고 귀환한 뒤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추진한 압바스 의장 등 ‘튀니지파’와 1987년 1차 인티파타 주체 세력으로 무장 투쟁 노선을 밟은 바르구티의 ‘토착파’로 양분돼 있다.
민심의 향방은 뚜렷하다. 튀니지파는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의 힘 있는 씨족 대표나 자본가와 손잡고 식민지 속의 식민지 통치구조를 만들며 민중 위에 군림, ‘썩은 귀족’이란 지탄을 받고 있다. 민중의 불만은 7월 대규모 시위로 분출됐고, 개혁파를 자임하는 압바스 의장도 한 통속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반면 바르구티는 1차 인티파타에서 피를 흘려 자치정부를 수립하고도 삶은 더 나빠졌다는 민중의 울분을 대변한다.
1958년 요르단강 서안에서 태어난 그는 팔레스타인의 베이르 제이트 대학에서 프랑스-아랍 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차 인티파타를 주도한 뒤 요르단으로 추방돼 파타운동과 연을 맺었고, 96년 자치의회 의원 당선 뒤 온건파에서 강경파로 전향했다.
그러나 그의 출마가 현실화할 지는 조금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우선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의 사면이나 옥중출마를 허용할지 불투명하다. 튀니지파도 바르구티 설득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스라엘의 하아레츠지는 바르구티가 파타운동 내 지분 확대를 조건으로 잠정적 ‘필요악’으로 압바스 수반 체제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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