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62)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아침마다 이메일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사상을 알려온 지 6개월 째다. 현재 수신 회원 수는 27만여 명."다산의 정신을 빠르고 넓게, 적은 비용으로 전달하려는 수단으로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막 시작했을 때 100명 정도였던 회원이 엄청나게 늘었다. 다산연구소 홈페이지(www.idasan.org) 게시판은 메일을 읽은 소감으로 뜨겁다."
메일 내용은 다산의 정신을 통해 비추어보는 오늘의 삶과 세상이다. 차분하고 잔잔한 문장 속에 은근한 세태 비판이 담겼다. 얼마 전 글 ‘데모는 번지고 있는데’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총파업 시위를 보고 18세기 농민시위 주동자 이계심이 자수한 데 현명하게 대처한 다산의 언행을 떠올리면서 쓴 것이다. ‘과연 이계심처럼 정당한 목소리인지 먼저 따져보고, 당국은 다산만큼 공정한 마음으로 사건을 처리하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목소리 큰 집단도 살고 당국도 편안할 길은 아마도 그 방법밖에 없을 듯 싶습니다.’
쌀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의 울분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횡포를 통탄하던 것과 맞닿는다(‘억울한 농민들의 함성’) 불량만두 파동으로 전국이 들끓었을 때 ‘늙은 아내 만두 솜씨 사람 입맛에 맞으니 검붉은 털 낙타국도 부러울 것 없어라’는 다산의 싯귀를 기억하고 불량식품 걱정 없는 바른 세상이 오기를 염원한다(‘만두만 썩었으리오’).
박 이사장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다산의 개혁 정신이다. "다산은 모든 법과 제도를 고치자는 ‘경세유표’적 개혁과 공직자의 의식 변화를 통해 제도를 바꾸려는 ‘목민심서’적 개혁’을 함께 탐구했습니다. ‘경세유표’적 개혁이 수구세력의 반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목민심서’적 개혁이라는 차선책을 마련했습니다. 개혁피로증을 앓고 있는 현재 정치상황을 풀어갈 수 있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게 우리 정치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다산의 사회개혁과 실사구시(實事求示) 철학을 되살려 도덕관을 확립하는 것이 ‘다산 전도’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가 다산에 관심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초 전남대 법학과 시절부터. 지도교수로부터 한국법제사 연구를 권유받고, 법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한 다산의 ‘경세유표’를 읽기 시작,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73년 공안사건으로 복역할 때도, 8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수배 중에도 저술을 번역하거나 출간하는 등 다산 연구에 매진해왔다.
13, 14대 의원(전남 무안)을 지내고 현재 성균관대 석좌 초빙교수로서 ‘다산과 21세기’ 강의를 맡고 있는 박 이사장은 이메일 서비스로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한 뒤 다산과 관련한 공개강좌와 지방강연 등 오프라인 쪽 활동도 확대할 계획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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