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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저기 네가 오고 있다 - 사랑이란, 나는 뭐라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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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저기 네가 오고 있다 - 사랑이란, 나는 뭐라 답할까

입력
200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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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냐 물었더니 사연 있는 한 후배는 두 말할 것 없다는 듯 매몰차다. "그거, 허구예요!" 서로 죽고 못사는 신혼의 다른 후배의 대답 역시 서슴없고 명쾌한데, "좋은 거죠. 크하하~!" 이 타협불능의 간극이 실은 한 몸임을, 긴 파동의 다른 국면임을 모르지 않을 그 자들은 싱겁게 돌아서는 선배의 뒤통수를 흘끔 째리며 ‘별 싱거운 인간 다 보네’ 했을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모든 사랑은 그렇게, 아무리 사소해도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무정형의 것이라, 다들 할 말이 많거나 아예 없는 것임이 손쉽게 증명된 셈이다.이 가을 여기, 16명의 내로라 하는 당대의 시인·소설가 등등이 각자의 ‘사랑’을 썼다. "이 나이에 낯 간지럽게…" 하던 소설가 김훈씨도, "하도 많이 써서 더 쓸게 있을라나" 하던 박범신씨도 썼다. 이윤기씨는 "그 얘기 꼭 한 번 쓰고 싶더라"며 기다렸다는 듯 원고 청탁을 수락했다. ‘저기 네가 오고 있다’(섬앤섬 발행)는 그렇게 모은 원고를 묶은 책이다. 책에는 외롭고, 쓸쓸하고, 막막하고, 아프고, 달콤하고, 아련하고, 단아하고, 성(聖·性)스러운 사랑들이 소설처럼, 수기처럼, 일기처럼, 칼럼처럼, 편지처럼 담겨 있다.

유학하는 딸과 중국에 머물고 있는 소설가 김인숙씨는 지난해 봄 ‘사스’와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연서(戀書)를 썼다. 병들고 죽고 격리되지만 별 수 없이 이어나가야 하는 처연한 자의 삶과 사랑. ‘사랑이 삶을 얼마나 많이, 오래 끌어안고 있을 수 있습니까? 반대로 삶은 사랑을 얼마나 오래 끌어안아줄 수 있습니까? 지금도 실은 냉정한 것이 어느 쪽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삶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니 그래서 더더욱, 사람이 그립던가 보다. ‘이토록 무력한 사람, 그러나 기댈 것은 사람밖에 없더라’며 ‘사랑은 한 순간의 격정이나 낭만이 아니라 흐름이고 달빛이고, 결국 인생’이라고, ‘사랑은 그렇게 삶과 함께 완성된다’고 썼다.

당찬 여성주의 작가 전경린씨는 ‘삶은, 실은 순조롭게 죽어가는 일’이고, ‘사랑은 죽음을 거스르는 생명력의 활동’이라고 했다. ‘(그래서)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역자이고 순교자이고 혁명가’라니 그에게 사랑의 옳고 그름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단호히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삶 속에서 감당할 수 있는가?’ 그가 작품 속에 그렸던 사랑을 부연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힘은, 스스로 자기 현실을 사유하고 자각하고 해결하며 어떤 벽 앞에서도 문을 열고 나가는 지성’이라고 했다.

소설가 박범신씨는 ‘젊은 날, 나는 사랑을 가리켜 고유명사라고 했다’는 문장으로 글을 연다. 어린왕자의 장미꽃처럼 유일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던 그는 하지만, ‘유일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솔깃한 결론으로 사유를 전개한다. 그리고 이를 ‘타협’이 아니라 ‘성숙’이라고 썼다. 그는 스탕달이 그의 연애론에서 은유했던 ‘잘츠부르크의 암염(巖鹽)’같은 사랑(연애)을 꿈꾼다. 지층에 눌린 나무들이 부식해 생긴 백색의 결정처럼 ‘내가 썩는 고통스런 과정’이 사랑이며, ‘시간의 세례를 통과하지 않은 사랑의 불꽃이란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불온하고 불안한 불꽃’이라고.

김훈씨에게 사랑은 결핍·갈증의 동의어 같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의 작품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여성부재’의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나는 사랑을 묘사하지 못한다…그것은 전달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다만 경험될 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담 좋은 소설가 이윤기씨는 작심한 듯 ‘결혼 예찬론’을 폈다. ‘나는 아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이는 어머니라, 아내를 어머니가 되게 한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가치를 탄생’시키는 성스러운 절차인 것이다. 시인이자 방송인 김갑수씨는 ‘사랑을 말하라면 차라리 섹스를 말하겠다’고 했다. 이런 저런 사랑 담론을 보면서도 ‘남성의 경우 그 주장을 펼치는 순간이 사정(射精) 전인지 후인지’ ‘여성 논객의 경우 평상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누리는지 아닌지’ 궁금하다고.

‘삶의 주름진 고랑을 (누구보다 많이) 갈아엎어’ 본 시인 유용주씨는 젊은 날 그의 사랑으로도 읽히는, 격정과 고독의 이야기 한 토막을 소설처럼 썼고, 김용택 시인도 첫 사랑 ‘그 여자’의 추억을 적었다. 소설가 공선옥씨는 ‘밀~크’에서 술-밥-약손-찜질방으로 이어져온 사랑의 형상을, 하성란씨는 가족 이야기를 빌어 하고싶던 말을 풀었다. ‘매혹’과 ‘도취’의 작가 박수영씨는 일기처럼 담담한 문체로 저릿한 이야기를 옮기고 있다.

"마흔 다섯 살 생일 이후 겪은 일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건은 늙음이었다"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말은 흘려 들을 일이다. 대신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던 시인(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중에서)의 말을 새겨두기로 하자. ‘가슴 애리는’ 기다림은 절대 나이에 구애될 일이 아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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