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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 명분 신분증 제도· 유사 FBI 도입/ 블레어, 재집권 부시 따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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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 명분 신분증 제도· 유사 FBI 도입/ 블레어, 재집권 부시 따라하나

입력
200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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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테러 등에 강력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시민권을 대폭 제한하는 법안들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3일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통해 시범 실시중인 신분증(ID카드) 제도를 2008년까지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고,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비슷한 중대조직범죄청(SOCA)을 창설하는 등 37개의 대 테러·조직범죄 법안을 발표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도 다음날 "대 테러정책을 내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법안들이 논란이 되는 것은 9·11 테러 이후 초법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미국 정부가 채택한 대 테러정책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선‘부시 따라하기’로 선거에서 이기려는 블레어 정권의 정치적 음모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2차 대전 뒤 폐기했던 신분증 제도를 52년 만에 부활시켰다. 여기에는 개인의 이름 주소 등 신상정보는 물론, 지문과 같은 생체인식 정보가 수록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될 계획이다. 테러·조직범죄를 수사하는데 기본 정보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런 신분증은 유럽대륙에서는 이미 보편화한 것이지만 시민권을 중시하는 영국의 전통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엄청난 침해""영국의 미국화"라며 반대 여론이 확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OCA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기존의 국립범죄정보처(NCIS) 국립범죄수사대(NCS) 세관조사국 기능을 통폐합해 5,000여명의 정예 경찰요원으로 신설되는 SOCA는 전화도청과 이메일 감청 자료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변호사 회계사 등의 고객 비밀번호에 대한 접근이 허용되고, 테러용의자의 금융거래 뿐 아니라, 인터넷 사용도 금지하는 시빌오더(civil order)’를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감형을 대가로 수사에 협조하게 하는 미국식 ‘플리바겐(plea bargain)’도 합법화했다. 이를 위해 배심원없이 판사가 재판을 관장하는 특별테러법원의 설치가 검토되고 있다.

이밖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테러 용의자를 재판 없이 무기한 억류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경찰서가 아닌 길가에서 즉석으로 용의자에 대한 생체지문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1 야당인 보수당은 "공포분위기를 조장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술수" "전 국민에게 바코드를 씌우겠다는 발상"이라는 등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야권은 특히 블레어 총리가 내년 5월 예정된 총선을 겨냥,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연장해 보겠다는 저의가 담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지도가 바닥인 블레어 총리가 마지막 승부수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사용했던 안보카드를 그대로 모방하려 한다는 것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Queen’s Speech란

영국 국왕은 국가원수로서 통상 11월 혹은 총선 직후 의회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이기 때문에 이 연설을 ‘여왕의 연설(Queen’s Speech)’이라고 부른다. 여왕의 연설은 내각의 수장인 총리의 조언대로 행해지므로 사실상 총리의 시정 연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국왕은 군림하는 상징으로서 왕관을 쓴 채 총리가 제출한 연설문에 "나의 정부는…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토를 단다.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영국 정치체제를 상징하는 행사라 할 수 있다. 여왕은 국회의 소집과 해산, 총리 및 각료의 임명, 법률의 재가 및 공포 등의 권한을 갖고 있으나 이 또한 내각의 조언을 따를 뿐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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