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많은 수험생들과 어머님들이 밤잠 설치며 준비한 수능시험에서 대규모 입시부정이 적발되었고, 4대입법에 대한 정치권의 논쟁 속에 서민경제의 회생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데다가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도 그리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한국사회의 무기력함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잃고 삶을 포기하고 있다.자고로 세상이 어지러우면 종교가 융성한다는 말이 있다. 현세의 어려움을 피해보고자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희구하는 일이 인간의 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휴식처가 되어야 할 종교에서조차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 5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다빈치 코드’란 소설을 통해 자명하게 믿어온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마치 송두리째 무너진 듯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인격적인 신(神)을 찾기 보다는 인간내면에 숨겨진 자기초월의 능력을 개발하려는 영성운동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기성종교도 사람들의 영원한 휴식처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듯싶어 마음이 찹찹하다.
본래 인간이 부조리한 현실을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은 ‘희망’이라고 한다. 시지프스 신화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산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자기모순을 수용할 수 있는 힘도 희망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 희망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공허한 유토피아나 맹목적인 신념이 아닌, 인간의 현실적 부조리를 뛰어 넘어 참된 삶의 가치와 의미를 현시(顯示)하는 진리만이 죽음을 넘어 인고(忍苦)의 세월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주변에서 접하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희생적 사랑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의 몸짓에서 우리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희망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싶다.
송용민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