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의 화두는 투명한 주주 중심의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외국인 지분이 대폭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투명경영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오너 중심의 1인 지배체제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무조건 덩치만 키워 이익만 많이 내면 좋은 기업 대접을 받는다는 전근대적인 인식이 지배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이 기업 생존의 필수요건이 된 것이다. 때문에 기업 총수들은 글로벌 경제에 맞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명경영,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자신의 회사 가치를 올려 주주나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리없이 기업 혁신을 이끌며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리더들을 알아본다.
■ 이구택 포스코 회장/ 투명한 ‘철의 정신’ 국민기업 우뚝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기업. 포스코 만큼이나 ‘국민기업’이라는 명칭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국내 기업은 없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도 반드시 경영권을 지켜야 할 국민기업으로 포스코를 지목한 바 있다.
공기업으로 시작한 포스코는 어느새 ‘철강 역사를 다시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자체 개발하고 분기 순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경영 측면에서도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장은 세계적 철강시장 호조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소리없이 세상을 바꾼다’는 광고 카피처럼 포스코호(號)의 성장과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구택(58)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1969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과 동시에 포항제철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샐러리맨의 우상인 ‘그룹 총수’의 반열에 올랐다.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투명한 경영체제 강화 ▦윤리경영 실천 ▦지속적인 성장엔진 확보 ▦경영혁신 가속화라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포스코가 민영화 된 만큼 투명하고 독립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상임이사와 사외이사 비중을 8대7에서 9대6으로 대폭 확대, 최고경영자(CEO)를 철저히 감시,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했다.
주주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서면투표제도 도입했다. 이와 더불어 "회사 이윤과 기업윤리가 상충될 때는 주저 없이 기업윤리를 선택하라"고 강조할 정도로 기업윤리를 강조한다. 뇌물은 준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거래를 중단할 정도로 엄격하다.
이 회장은 8월 포스코 고유의 저원가·친환경 혁신 공법인 파이넥스 설비를 착공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엔진을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국내투자 외에도 지난해 11월 중국에 포스코 차이나를 세우는 등 해외투자도 적극적이다. 인도와 브라질 등에 제철소 건설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포스코하면 6시그마를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경영 전반의 효율을 극대화하는데도 관심이 크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포스코는 올 3분기 순이익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3분기까지 전체 매출은 14조1,84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매출액 14조3,593억원에 이미 육박했고, 순이익도 2조6,47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보다 오히려 6,600여억원이 늘었다. 특히 자기자본비율이 75.8%로 지난해 70.4%보다 재무구조 또한 더욱 건실해졌다.
이 회장은 "포스코는 그 동안 핵심 역량들을 꾸준히 강화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본격적인 성장경영에 나서겠다"고 새로운 도약을 약속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 구학서 신세계 사장/ 소비자 지상주의로 ‘이마트 신화’ 창조
몇 달째 카드사와 수수료 분쟁을 겪고 있는 신세계 이마트를 놓고 할인점 업계에선 "너무 강경하다" "그래도 대단하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공룡과 같은 신용카드사에 맞서 카드를 거부하고 직불카드라는 대안까지 내놓는 등 이마트의 대응은 기발하기만 하다.
그 뒤에는 신세계 구학서 사장의 뚜렷한 의지가 있다. 분쟁이 불거진 순간 구 사장은 "소비자 이익에 따라 판단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경영이익뿐만 아니라 유통기업으로 체질강화에 노력해 온 전문 경영인다운 사고다.
구 사장은 신세계에 전문 유통기업으로 혼과 힘을 불어넣은 CEO이다. 그는 1999년 취임 후 3가지 혁신 과제로 효율경영, 수익경영, 윤리경영을 설정했다. 국가적으로는 외환위기(IMF)가 휩쓸고, 신세계로선 현대蓉?×?밀려 업계 3위로 내려앉은 당시 안팎의 혁신이 절실했던 터다.
구 사장은 기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카드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먼저 비유통 기업을 정리했다. 사업정리 중 압권은 당시 외국계와 합작하던 할인점 ‘프라이스 클럽’의 매각이다. 높은 환율로 매각자금을 확보하고 값싸게 부지를 선점한 것은 현재의 이마트 점포확장에 밑거름이 됐다.
또 백화점용으로 구입했던 부지는 과감히 이마트로 전환, 오픈했다. 묶여있는 고정비를 가능한 한 회전시키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과거 1회전에서 미치지 못했던 신세계의 자산회전율은 현재 1.7회전에 이른다.
구 사장은 또 윤리경영에 주력해 1999년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을 설립해 납품업체의 로비나 구매 담당자의 횡포를 막고, 2003년에는 유통업계 최초로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올해는 신세계 네트워크론을 도입, 중소 납품업체들이 계약 직후 대금을 바로 현찰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신세계는 현재 7개 백화점, 71개의 할인점(중국 2개점 포함)을 거느린, 당기 순이익 3,000억원대의 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만 해도 60억원에 불과했던 순익이 50배로 늘어난 것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최태원 SK 회장/ 달라진 '포스트 재벌' 모델 제시
최태원 SK㈜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최근 아주 딴 사람으로 느껴질 만큼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 구속과 경영권 분쟁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겪고 난 뒤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기업에 대한 생각 등 모든 면에서 확연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SK그룹이 ‘뉴 SK’라는 새 비전을 내걸고 조용하지만, 과감한 지배구조 개혁을 시도하는 것도 최 회장의 개인적 변신과 무관치 않다. 재계에서는 이미 50조원 매출과 47조원 자산의 재계 4위 SK그룹이 한국형 재벌을 탈피한 ‘포스트 재벌’로 이행하고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은 우선 한국형 재벌의 폐해로 지적돼온 ▦1인 지배 체제로 인한 의사결정구조의 불투명성 ▦계열사간 부당 지원 등을 사실상 완전 해소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재벌 방식인 주식네트워크를 탈피,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독립기업간 네트워크’ 형태로 재벌 탈피형 그룹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지주 회사격인 SK㈜의 사외이사 비중을 50%에서 70%로 확대, 탈 재벌형 이사회를 구성했다. 나아가 소액주주나 외국인 주주를 대상으로 사외이사 공개 추천제까지 도입했다. 특히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을 위해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사회 사무국’을 설치하는 한편 사외이사 중심의 ‘투명경영위원회’와 ‘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계열사간 부당지원은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 핵심계열사인 SK텔레콤의 경우 100억원 이상 내부거래시 이사회에서 검증과 승인을 받도록 했으며 SK㈜의 경우는 투명경영위원회에서 내부거래를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이 같은 포스트 재벌 경영의 효과는 실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히는 이익, 주가, 성장성 등 3가지에서 사상 최고 또는 최고가 등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 SK㈜는 설립 42년 만에 올해 처음으로 순이익 1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최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던 1998년 당시 순이익이 1,157억원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7년여만에 10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2대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 덕분도 있지만, 순이익 증가와 투명 경영 등으로 SK㈜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6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1998년 당시 1만6,000원대에 비해 4배 가까이 올랐다. 이 같은 최 회장의 지배구조·사업구조·재무구조 개선 노력은 시장은 물론 강성으로 유명한 SK㈜의 노조에게서도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SK㈜의 사업장이 있는 울산을 포함해 부산과 인천 등도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SK㈜ 주식 갖기 운동’을 벌이며 최 회장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황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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