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육군 참모총장의 사의를 반려함으로써 자칫 ‘군란(軍亂)’으로 번질 뻔한 사태에 제동이 걸렸다. 장성비리 의혹 수사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도 비쳐지는 남재준 총장의 사의가 받아들여졌을 경우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 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육군은 이번 사태로 큰 상처를 입어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항의인가 조직보호인가 남 총장의 사의표명 사실이 알려진 25일 오후 국방부 관계자들은 장성진급 비리 의혹에 대한 군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자 더 이상 육군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남 총장이 용퇴를 결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가 장기화할 경우 영관급 장교에 이어 장성들까지 줄줄이 소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가 개시된 뒤 남 총장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갈 것이니 참모들은 본연의 자세로 의연하게 대처하라"며 군검찰의 수사가 사의표명의 직접적인 계기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국방 전문가들은 "비리수사가 확대되면 군의 사기에 악영향이 초래되고 육군 조직에도 혼란이 올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용퇴를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항의성 행동이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본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군 일각에서는 "충분한 혐의도 없는 괴문서의 비리 내용을 토대로 강수를 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군 검찰의 폭거에 더 이상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반발이 불거진 터였다. 더욱이 남 총장은 군검찰에 대한 개혁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적이 있어 이번 사태는 군검찰을 내세운 청와대와 남 총장으로 대표되는 군 보수세력의 ‘한판 싸움’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비리 수사 주춤할까 노 대통령이 남 총장의 사의를 반려함으로써 남 총장은 재신임을 받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지난번 ‘정중부의 난’ 발언 사건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국방부가 발표한 사실까지 포함해 세번째 신임을 받았다고도 한다. 이로써 남 총장이 주장하는 육군 인사시스템의 공정성도 힘을 받게 됐다. 남 총장은 이날 사의를 표명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도 "군 인사는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며 "투서의 내용은 대부분 억측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안팎에서는 남 총장이 인사비리 의혹과 관련해 면죄부를 받은 만큼 군검찰의 수사도 다소 느슨해 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소식통은 "구체적인 범죄 혐의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관급 장교들을 소환해 밤늦도록 조사하는 행위는 일단 중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참여정부의 군 개혁 전도사로 문민화와 군검찰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던 윤광웅 장관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윤 장관은 남 총장의 사의표명 움직임을 포착하고 파장 확대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남 총장을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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