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글로벌 경영시대를 맞아 기업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잘 나가던 기업이 최고경영자의 한순간 판단 잘못으로 문을 닫는가 하면, 위태롭던 기업이 CEO의 리더십을 등에 업고 우량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절대 불황기에 최고경영자의 비중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이런 점에서 역경을 빠진 기업을 부활시키거나 통합을 이끌어 낸 CEO들의 성공 스토리는 기업인들에게는 더 없는 귀감이다. 구조조정과 합병을 통해 새로운 우량기업을 탄생시킨 CEO들의 탁월한 경영전략을 살펴본다.
■ 서경배 태평양 사장/ 핵심역량 강화로 ‘세계적 기업’포부
서경배 ㈜태평양 사장은 직원들에게 "태평양은 하나의 중소기업일 뿐"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 국내 절대 1위, 세계적으로도 24위권에 이르는 화장품기업의 사장이 하는 말로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 속에는 기업의 핵심역량인 ‘뷰티 & 헬스’에만 집중한다는 서 사장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태평양의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막내아들인 서경배 사장은 1993년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에 취임한 직후 곧바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1991년 태평양증권, 태평양경제연구소를 SK(당시 선경)에 매각한 후 1995년 돌핀스 프로야구단, 1995년 한국써보, 1996년 태평양패션, 1997년 여자농구단을 잇따라 매각 또는 청산했다.
돌이켜 보면 선견지명이라고 할 만하다. 특별한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닌데도 서 사장은 "태평양의 경쟁력은 뷰티사업"이라며 주변의 만류에도 흔들림 없이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계열사들은 모두 제값대로 팔렸고 사내에선 "방대한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면 외환위기(IMF)때 어떤 일을 겪었을지 모른다"는 이들이 많다.
1991년 태평양 계열사는 총 24개였으나 현재는 오직 화장품과 용기, 원료 등 관련사업으로만 한정된 ㈜태평양과 8개 계열사만 남았다. 반면 실적은 1997년 6,906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조1,198억원이 됐고 순이익은 111억원에서 1,867억원으로 매출보다 몇 배나 뛰었다.
서 사장은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화장품업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천명하고 있다. 향수 브랜드 ‘롤리타 렘피카’가 하버드대에서 성공마케팅 사례로 분석될 정도로 히트를 쳤고 최근엔 아시아시장에 라네즈, 미국시장에 아모레퍼시픽을 안착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태평양의 목표는 국내 1위가 아닙니다. 글로벌 10대 기업에 드는 회사로 도약할 것입니다." 서 사장은 그 시한을 2015년으로 잡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성공적 통합 이끈 소비자금융 선두주자
‘한국인 최초의 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 대표, 은행권 최초의 40대 은행장, 한국씨티은행 초대 은행장…’
금융인 하영구(51)의 프로필은 온통 ‘최초’와 ‘초대’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돼 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판단력과 추진력, 끈기, 부지런함이 그를 만들었으며 타이틀은 따라온 ‘덤’일 뿐이라는 것.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과 씨티그룹과의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하 행장은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 입행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금담당 총괄이사, 투자금융그룹 대표, 기업금융그룹 대표 등을 だ覃?하 행장은 98년 한국인 최초로 소비자금융그룹 대표를 맡으면서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게 된다.
그는 조명에 걸맞게 취임 첫해에 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을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시키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활약상은 진 념 당시 경제부총리가 정부주도 금융지주 회사의 CEO로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2001년 48세의 나이에 한미은행장에 선임되면서 또 한번 주목을 끈 하 행장은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하게 되자 ‘당연히’ 합병은행의 초대행장으로 선임됐다. 한국씨티은행 탄생에 금융계가 잔뜩 긴장하는 것은 씨티그룹이라는 배경때문도 있지만, 하 행장의 탁월한 능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 행장은 지난 11월2일 창립 기자회견에서 "시장점유율 10% 달성",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은행" "새로운 기업 대출 모델의 창출" 등의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실상 기존 선도은행들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그 청사진이 그대로 실현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실패를 모르는 젊은 은행장이 은행계에 일대 격변을 몰고 올 것이라는 분석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박진석기자jseok@hk.co.kr
■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 위기관리 탁월…올 사상 첫 흑자 일궈
지난해 8월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이 취임했을 때 이 회사에는 희망이 없었다. 1997년 기간통신 사업자로 국민주 청약 열풍까지 몰고 오며 화려하게 출발했던 하나로텔레콤은 무리한 확장정책으로 2조원이 넘는 빚더미에 신음하고 있었다.
대주주를 구성하고 있는 재벌 그룹들은 하나로텔레콤이 증자 및 외자유치를 시도할 때마다 부결시켜 이 회사를 부도로 몰아가고 있었다. 윤 사장 역시 노조의 격렬한 반대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 끝에 취임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지난 8월, 윤 사장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하나로텔레콤이 위기를 극복했고 재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윤 사장의 발언에 대해 증시는 하나로텔레콤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현재 하나로텔레콤의 유옘?위기는 외자유치로 완전히 해결됐고 올해 실적은 사상 첫 흑자달성을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극적인 상황 반전은 윤 사장의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취임하자 최대주주인 LG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뉴브리지-AIG컨소시엄의 외자도입계약을 체결했다. 자신을 사장으로 추천했던 LG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LG의 반대로 주총에서의 표대결이 불가피해지자 모든 임직원들과 함께 일일이 소액주주를 찾아가 위임장을 받아내 극적으로 외자유치안을 관철시켰다.
그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자 곧바로 경영혁신에 나서 하나로텔레콤을 ‘빠르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바꾸었다. 이를 기반으로 두루넷 인수와 와이브로 사업 신청에 뛰어들어 하나로텔레콤을 차세대 종합 멀티미디어 사업자로 도약시키고 있다.
임직원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경영혁신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임직원과 격의없는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추진력·섬세함 겸비…위기를 기회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도 현대건설이 향후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64)은 거칠기로 소문 난 건설업계에서 ‘추진력과 섬세함’을 겸비한 흔치 않은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이 사장은 본부장들과의 간부회의 때에는 마치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격정적으로 회의를 주재한다. 하지만 짬만 나면 국내외 현장을 직접 챙기고, 심지어 구내 휴게실과 신입사원 대기장소에까지 들러 격려하는 ‘스킨십 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설분야에만 40년을 몸담아 온 이 사장은 유독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건설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몇몇 업체의 부실 현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해외건설은 보릿고개 시절 맨손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던 효자 시장입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건설업체들은 국내에만 안주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2003년 3월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이 사장이 만신창이가 된 현대건설의 구원 투수로 나서면서 현대건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직원 월급도 제대로 못 주던 위기의 시절이었습니다. 친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까지 떠안으면서 회사로 돌아온 것은 ‘현대건설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장이 취임 후 현대건설의 경영 실적은 물론이고 사내 분위기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7조1,009억원의 매출을 올려 2001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고, 영업 이익률은 2002년 3.6%에서 5.9%로 높아졌다. 연초 6,000원대였던 주가도 2배가 넘는 1만5,000만원대로 급상승했고, 신용등급도 취임전 BBB-에서 BBB+로 두 단계 올라갔다. 그럼에도 이 사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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