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침체된 경기부양을 위해 한국판 뉴딜정책에 동원하자,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투입하자, 외국자본으로부터 국내기업의 경영방어를 위해 활용하자는 등 국민연금은 이래저래 용처가 많지만 함부로 요리하기에는 부담스런 재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국민연금기금은 다른 투자자금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여유자금이 아니라 미래 국민의 노후생활을 지켜줄 연금수급을 위해 어렵사리 모아오고 있는 책임준비금이라는 점, 기금의 규모가 너무 커서 국민경제 및 금융시장을 자칫하면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메가톤급 핵무기라는 점,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라 국민들이 소비하거나 저축했을 돈을 국가가 강제저축의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일반 투자자금은 수익성·안정성·유동성의 원칙에 따라 운용하면 되지만 국민연금은 이런 기본원칙 이외에도 공공성의 원칙이 중요하다. 공공성이란 국민연금이 국민경제 및 금융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중립적으로 운용돼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판 뉴딜정책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문제는, 그 필요성 여부에 대해 제기되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국가가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면 조세나 국채발행이라는 투명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굳이 비용이 더 많이 들고 불투명한 민간투자방안이라는 경로로 조달하려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
다음으로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투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고 점진적으로 투자액도 늘리고 있으며, 그 속도와 규모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 뿐이다. 주식투자는 수익성이 높을 수 있는 만큼 위험도 높은 투자이다. 국민연금기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노후의 필수자금을 위험한 자산에 선도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기가 극심한 불황인데도 불구하고 주가지수가 700~800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10조원 이상 투자된 국민연금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400조원에 달하는 투기성 짙은 시중의 유동자금도 주식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상황에서, 안정성을 제일로 요하는 국민연금이 앞장서서 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국민연금 기금이 외국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경영권을 방어한다는 의미를 뒤집어 보면 국민연금이 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국민연금기금 규모의 거대성을 감안할 때, 이는 자유시장 경제의 대전제를 근본부터 훼손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은 이유는 국민연금기금의 운영구조의 불투명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운영구조를 보다 투명하고 전문적이고 책임성있게 관리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재설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조급하게 서둘기보다는 국민연금에 대한 중장기적의 비전하에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검토 후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국민연금 기금을 어떻게 투자할지, 위험한 자산에 어느 정도까지 투자할지 등의 중대한 문제는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이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에서 결정되는 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금융보험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