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중도란 적당한 절충주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근대사적으로 볼 때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중도라는 말이 정략적으로 타협의 도구가 되었고 때로는 회색적 태도로 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중도(中道)는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의 기하학적 중간점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욱이 중도는 그들 사이의 물리적 차이를 뛰어넘어, 공동선 내지 사회전체의 이익이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의 합의와 통합을 의미한다.그러므로 진정한 중도는 우선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주장을 진솔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각각의 사상의 상대적 가치를 공정하게 포용하여야 한다. 중도는 이념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사회를 질적으로 발전되고 선진화한 단계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출범하는 기독교 비정부기구인‘기독교사회책임’은 중도의 본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중도통합과 개혁’이라는 통합적이고 개혁적인 운동노선을 택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중도통합 노선은 좌와 우나 보수와 진보를 함께 포용하고 통합한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은 국민적 합의와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접근법에 의해 가능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 갈등의 핵심사안 중의 하나인 국가보안법 폐지냐, 개정이냐를 두고 보수와 진보가 정권의 명운은 물론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이 경우 중도통합세력은 우선 국민 다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핀다. 국민들의 60% 내지 70%가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둘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으로 보완해도 충분히 사각지대가 없을 것이라는 열린우리당의 주장과 사각지대가 분명히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인권침해 조항만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대체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한나라당의 주장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실사구시)인지를 찾아본다.
이 경우 양쪽이 모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가정을 앞세우는 주장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 중도통합적 결론은 "국가보안법을 일단 개정하되, 일정기간(예를 들면 3년) 한시적 법안으로 유지하고 어느 주장이 맞는지,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검증하고 재론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최근 우리사회 일각에서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의 경우에도 중도통합적 해결책이 가능하다.
이렇듯 중도는 진보와 보수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논의를 출발한다. 동시에 진보와 보수가 자신들을 절대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고 국론분열적임을 지적하고, 한 단계 높은 방향으로 이들을 설득하고 계몽하여 나아가야 한다.
각자가 자신들을 절대화하지 않을 때 진정 자신들의 가치와 진정성이 살아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임을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진보는 보수에게서 배우고, 보수는 진보에게서 배울 때 진정으로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한다. 아울러 중도의 입장을 바르게 실천하기 위하여 생각이 다른 사람을 모두 적대시하는 극단적 이념이나 불관용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확실히 하고, 국민적 합의와 실사구시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 경영학 기독교사회책임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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