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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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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입력
2004.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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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 필자는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태민(류수영)이 불쌍해 죽겠다.그는 자기 능력으로 그룹 사장이 됐고, 오너의 아들이 경영을 ‘거부’하자 충실히 회사를 지켜냈으며, 돕고 싶은 마음에 은수(유진)를 취직시켜 주고는 그게 자신의 이력상 '첫번째 낙하산’이라고 할 정도로 공사(公私) 구분에 철저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는 99.99%의 확률로 은수의 사랑을 얻지 못할 것이고, 경영권은 현우(지성)에게 넘어갈 것이다. 또 현우의 실종 후 행적을 숨기기 위해 ‘나쁜 짓’을 했으므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물론 거기엔 이유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현우의 아버지 탓에 자살한데 대한 복수심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더 못됐다. 그럼 이 남자는 평생 불행하기만 했다는 것 아닌가. 재벌그룹의 회장이 모든 것을 가지는 ‘트렌디 드라마 월드’에서, 태민은 불행이 운명이다. 그는 악역이니까.

그래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조금 더 영리하지만, 조금 더 얄미운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낯 뜨거울 정도로 트렌디 드라마의 설정을 죄다끌어온다. 그룹 회장의 아들은 ‘하필이면’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에 걸리고, ‘하필이면’ 자신을 구해준 사람과 사랑에 빠지며, ‘하필이면’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되찾는다.

주인공도 처음엔 동네의사를 사랑하던 평범한 소녀지만, 곧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며, 현우의 회사에 취직해 동료들의 구박을 받으며 신데렐라로의변신 준비를 완료한 뒤, 적당한 우연과 사건들이 겹쳐 두 남자의 관심을 얻는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직장 한편에는 사사건건 그녀를 괴롭히는 동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녀를 무조건 돕는 친구가 있다.

이 드라마는 온갖 장르의 설정들을 모아놨으되 그것들을 한꺼번에 쏟는 대신 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차분히 풀어놓는다. 현우가 기억을 잃었다가 찾는 과정에서는 태민의 음모가 뒤섞인 스릴러, 기억을 잃은 현우와 은수가 사랑할 때는 멜로드라마가 펼쳐지고, 은수가 서울에 와서는 재벌그룹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이어진다.

뻔한 에피소드지만 장면마다 뚜렷한 사건이 벌어지며 분명한 완결성으로 시청자의 호흡을 조절하고, 관습적인 설정들은 인물의 상황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그리고 태민같은 다면적인 캐릭터는 이 드라마를 뻔하지 않은 것처럼 윤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이 드라마는 모두가 알고 있는 길을 걸을 것이다. 악역은 매력적이되 주인공이 될 수 없고, 또한 왕자와 신데렐라를 위해서라면 어떤비상식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매력적인 한 명의 ‘사람’은 주인공을 위해 처절하게 희생된다.

왜 한국의 ‘재벌동화’는 단 한번도 능력 있는 악역을 주인공으로 쓰지못하고, 그 사람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걸까. 혹시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트렌디 드라마의 거물 이승렬 PD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대중은 새로운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다만 똑같은 걸 ‘부분 업그레이드’시킨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대중문화평론가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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