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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 10권 출간한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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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 10권 출간한 장정일

입력
2004.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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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글꾼 장정일씨가 삼국지에 손을 댔다는 것 자체가 문단의 화제였던 적이 있었다. 가장 아방가르드적인 그가 보수 고전의 대명사격인 삼국지에 덤벼든 것이었으니…당초 3년쯤으로 예상한 작업을 무려 5년이나 끌던 끝에 그가 10권의 ‘삼국지’(김영사 발행)를 들고 나타났다. 22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가진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자료 수집ㆍ연구에만 무려 2년 반이 걸리더라”고 말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두고 ‘칠실삼허(七實三虛ㆍ청조 사학자 장학성의 말)’이라고 하지요.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와 비교할 때 30%는 허구라는 말인데, 제 눈에는 ‘삼실칠허’입디다.

소설적 재미를 위해 정사를 비튼 것일 텐데, 저도 역사와 허구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가령, 소설 후반부에 아버지 장비의 복수에 나서는 아들 장포는 정작 역사에서는 장비보다 먼저 죽거든요. 역사를 충실히따르자면 가뜩이나 재미가 반감하는 유비 삼형제 이후의 서사적 긴장이 뚝떨어지겠지요.”

그는 정사를 원본으로 하고, 거기에 새로운 사실(史實)들을 포함시켜 우리시대의 역사의식으로 재조명했다고 말한다. 그 작업은 도식적으로 보자면, 중화주의와 춘추의 그림자 걷어내기였다.

“나관중과 모종강 부자 이후 여러 여러 삼국지들이 답습한 한족 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여러 제후들의 왕실에 대한 불충과 무단행위가당대에는 보편적이었지만, 여독 동탁과 여포만 가혹하게 묘사된 것도 그들이 정통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관으로 보자면 요동지방의 주도권을 놓고 한족과 다퉜던 고구려계(東胡)도 오랑캐일 뿐인 것이죠.

공맹의 도를 깨친 자들은 선(善)이고 나머지는 악이라고 보는, 춘추사관의이분법적 도식도 털어냈습니다. 가령, 한나라 멸망의 계기였던 민중봉기를‘황건적의 난’이라고 한다면 삼국시대 민중의 염원과 ‘의로운 봉기’로부르는 현 중국의 역사적 진실은 가려집니다.

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낮추는 ‘촉한정통론’도 유교적 이념에 근거한 체제옹호론적 해석입니다. 삼국지에는 무수한 제후들이 등장하지만 정사를 보면 황건군과 손을 잡는 제후는 유비가 유일합니다.”

그는 “우리가 알던 삼국지에서 중화사상과 춘추필법을 걷어내니 ‘소설’이 보이더라”고도 했고, “기존의 삼국지 독자들이 경험해야 했던 선험적 감정이입, 즉 읽자마자, 혹은 읽기 전부터 내 편 네 편을 나누게 되던소설적 족쇄를 풀었다”고도 했다.

-여성적 서사에도 무게를 뒀다는데.

“대표적인 남성적 군담역사소설이 삼국지 아닙니까. 그 무지막지한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은 무명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그 껍질을 벗기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관우가 유비의 둘째 부인을 옹위해 조조진영을 탈출하던 중 황건군 잔당을 만나죠. 부하로 받아들여달라는 그들의 청은 황숙(皇叔)의 군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감부인은 ‘병비일가(兵匪一家)’라는 말로 우직한 관우의 뜻을 꺾습니다.

감부인의 말은 의리와 대의명분을 앞세운 남성적 기만의 세계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서사는 남녀노소의 것이라는 ‘고전’에서 소외된 여성 독자들을 위한 것이면서, 남성적 삼국지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제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 5년 씨름 끝에 그가 알게 된 삼국지는 어떤 책일까. “정치 국방 요리여성 의료 등 워낙 방대한 주제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일단 읽고 나면 뭔가 말할 게 생기고 말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드문 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토를 단다. “다만 지금껏 옛날식 이야기가 되풀이되다 보니 그 많은 것들이 차단됐지만 말입니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삼국지는 대작 기획답게 출판사의 요청을 작가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번역되거나 편역 됐다. 장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전작들에 대한 평가를 청하자 장씨도 주춤거린다.

“가령 이문열씨의 삼국지가 지닌 보수성은 소설 속 여러 평문들을 통해 확인되는데, 이는 80년대 운동권 시대에 대한 작가의 대타의식 즉 당시의시대정신에 각을 세워 글을 썼을 것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지하게 거론되지 않은 것은 ‘창작이 아니라 삼국지니까, 삼국지자체가 보수적이니까’하는 논리에 따른 것이지요. 이제는 중국의 누구본, 대만의 누구본이 아닌 ‘창작’으로서의 우리 삼국지 판본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봅니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 기존의 '삼국지'들

우리에게는 숱한 ‘삼국지’가 있다. 매년 수십 종에 이르는 교양, 학술,실용 서적들이 ‘삼국지’를 키워드로 차용하고 있고, 당대의 간판 작가들이 정역ㆍ평역 등의 형태로 삼국지를 출간했다.

현재 소설 ‘삼국지’ 시장을 누비고 있는 대표주자는 이문열 황석영 조성기 김구용씨 등. 이문열씨의 삼국지(민음사)는 나관중본을 원전으로 삼은 평역본이다.

삼국지의 무대를 실지 조사하고 문헌을 살펴 썼으며, 조조를 높이 평가하고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88년 출간됐다가 최근 그림을 대폭 보강한 개정판을 냈다.

황석영의 삼국지(창비)는 명대의 나관중본을 청대 모륜 모종강 부자가 수정한 판본(모종강본)에 뿌리를 두되, 모종강본의 오류를 수정해 99년 중국상해 강소고적출판사가 출간한 ‘수상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았다.

반면 조성기씨의 삼국지(열림원)는 정역본으로 분류된다. 즉 연의(演義)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인데, 한문투를 최대한 줄여 썼고, 군데군데 수묵화를 삽입했다.

85년 고려원에서 출간된 정비석의 삼국지도 최근 출판사(은행나무)를 옮겨재출간 됐고, 시인이자 한학자인 김구용씨가 모종강본을 충실히 번역해 낸‘삼국지연의’(솔)도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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