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78ㆍ사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입’이 다시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그는 19일 유럽중앙은행(ECB) 회의에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0.5%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안할 때, 해외 투자가들이 달러화 자산 매입을 줄일 것”이라며 추세적 달러약세를 시사했다.또 “환율예측은 동전 던지기처럼 어렵다”면서도 “인위적인 시장개입이큰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며 일부 국가의 환율방어에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그린스펀 발언 이후 뉴욕시장을 비롯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화와 주가는 폭락세를 나타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그린스펀도 정치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 누가 대통령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2001년 부시 행정부가 강력 추진한 감세정책에 대한 지지가 그 대표적인 예로 제시됐다. 재정적자를 부르는 감세정책에 반대하던 그린스펀은 98년 이후 계속된 재정흑자에 주목, 입장을 선회했다.
그러나 감세정책 지지이후 3년간 연방정부 예산은 5조6,000억달러 흑자에서 2조3,000억 달러 적자로 전환,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미 경제의 최대 골칫거리로 부상했다.
WSJ는 그린스펀 의장이 경제 데이터를 잘못 읽어내고 정치권 입맛에 맞는정책을 펴 지금의 엄청난 재정적자를 불렀다고 결론지었다. 쌍둥이 적자와환율의 혼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WSJ은 그린스펀이 17년간 연준리 의장을 맡아 미 경제를 침체위기에서 구해냈다는 데 대해서는 여전히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 신문은 그의성공이 ‘도그마가 아닌 데이터’에서 기인한다며 그린스펀의 이론과 학설에 얽매이지 않는 데이터 분석력에 주목했다. 그 같은 예로 들어지는 것이94년의 금리인상 도박. 경기침체 우려로 공격적 금리인상이 어려울 것이란전망을 깨고 그린스펀은 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올렸다. 금리는 이후5차례 인상됐지만 우려되던 인플레이션은 3%선에서 안정되며 미 경제는 연착륙에 성공했다.
96년에는 반대로 금리인상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미 경제를 지켰다. 연준리 멤버 대부분이 인플레를 우려해 금리인상을 요구했지만 그린스펀은 신경제의 특징인 인플레 없는 성장에 주목, 금리를 동결시켰다. 그린스펀은“버블을 터뜨리고 싶지 않다”며 증시호황을 2년간 지속시켰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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