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란의 평화제스처를 사실상 일축했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에서“이란이 핵 무기 개발에 핵심이 되는 물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있다는 보고가 있어 우려하고 있다”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이 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 유럽연합(EU) 대표단과의 협상에서 ‘우라늄 농축 전면중단’을 선언한 이후 나온 것이다.그는 “미국은 이란의 핵 활동을 면밀히 추적해 왔다”고 경고하며, “국제 사회도 이를 중대한 문제로 우려,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손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진정 국면에 들어선 듯 하던 이란 핵 개발 문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의 방침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시사점을준다. 우선은 중재자를 통한 구두약속 만으론 부족하다 강경 방침이다. 이란은 유럽 국가들에 핵개발 포기를 약속했지만 부시의 대답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남한의 중재역할에도 한계가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두 번째는 이는 부시 행정부가 최우선 외교 의제로 이란을 선택했다는 것을 공개 천명했다는 점이다. 북 핵 문제는 6자 회담이라는 관리 틀에 넣어두고 우선 이란에 대한 압박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는 “부시의 강성 발언은 특히 이란이 유럽측을 속였을 가능성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틈 벌리기를 통해 2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이란 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포석이라는 것. 22일 발효 예정인 EU와 이란의 타협은 최근 원심분리농축 직전 물질인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 비밀 개발 의혹 등으로 안 그래도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다.
미국은 이란을 이라크 안정화 및 중동 민주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간주하고 있는 만큼 정권 교체까지 직접 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지의 일요판 ‘옵저버’는 21일 “미국 국방부 시나리오에 이란 핵 무기 위협 제거를 위한 군사행동이 논의되기 시작했
다”며 “특히 핵 시설이 아닌 지도부 공습 등 정치 안보 목표물로 강조점을 전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은 이미
영국에 EU의 외교노선과 미국의 강경노선 중 선택할 것을 경고했으며 EU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 소식통들은 “부시의 호전적 언사가 이란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메가폰’외교인지 아니면 미국이 새로운 군사적 모험으로 기우는 증거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이 강하게 몰아붙일수록 이란 사태는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부시의 발언은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ment Prophesy)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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