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존 버거는 40여년 전 시(詩)와 사진을 함께 배열하려는 생각을 품고 사진 찍는 법을 배우러 나섰다. 그때 만난 이가 프랑스사진작가 장 모르. 둘은 글과 이미지를 조화시켜 모두 4권의 책을 냈다.그 중 포토에세이 ‘제7의 인간’(차미례 옮김),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희재 옮김)과 소설‘행운아’(김현우 옮김)등 3권이 도서출판 풀빛에서나왔다.
‘제7의 인간’이 나온 1970년대 전반,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는 블루칼라 7명 중 1명이 외국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였다. 두 저자는 터키 농촌 출신으로 독일로 이주한 노동자, ‘그’의 궤적을 쫓는다.
둘은 ‘그’의 꿈과 악몽을 전하고 있다.‘그’는 “땅바닥 위에서 금덩이?주울” 거라는 꿈을 품고 국경을 넘지만, ‘그’가 꿈꾼 금덩이는 “아주 굉장히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땅바닥에 부딪쳤을 때는 아주 깊이깊이 박혀”버리기 때문에 붙잡을 수가 없다.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는 인간이라기보다는단지 계약기간에만 필요한 노동상품일 뿐이다. 그나마 노동력의 가치도 헐값인데다 불법체류의 멍에를 쓰기도 십상이다.
터키인 이주노동자 ‘그’의 출발부터 독일 공장지대에서의 생활과 귀향까지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중간중간 저개발국 노동력의 선진국 유입의 현상과 메커니즘에 관한 논문을 섞는, 버거의 서술방식이 처음에는 혼란스럽다.
그러나 70년대 유럽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3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 한국에 들어와있는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겹쳐져 읽기에 큰 불편은 없다. 장모르의 사진만 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존 버거와 장 모르는 독자들에게 사진 이미지만으로 이 책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992년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됐지만 금방 잊혀졌다. 당시만 해도 여기서 증언하고 비판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한국사회의 살갗을파고 들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제 7의 인간’이 때를 만났다고 할 만하다. 이 책은 실업문제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3D업종을 기피하는바람에 외국의 노동력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한국 노동시장의 패러독스를설명하기에 손색없다.
11년 만에 역시 재출간 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미학에 대한 물음을 검토하는 에세이다. 이번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소설 ‘행운아’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환자들과 소통하고 마을 전체의 역사를 모으는, 의사 존 사샬의 행복한 정신적 교유를 담고 있다.
/문향란기자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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