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 극장을 찾은 고등학생 철수군. ‘학생 할인 되나요?’를 영어로 뭐라 할까. 답은 ‘Do you have concessions for high school students?’라고 하면 된다. ‘Concession’이 바로 할인입장권.하나 더. 친구가 ‘우리 주말에 영화나 한 편 볼까?’라고 말한다. 이 때‘영화’를 영어로 옮기면 뭘까. film? movie? cinema? 답은 movie다. film은 학문적인 측면을 movie는 오락성을 cinema는 미학적 특징을 강조하는 단어다.
외화번역의 1인자 이미도(43)씨가 최근 발간한 영어교재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디자인하우스)에는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싱싱한 영어표현이 가득하다. ‘재미 있고 유익함’은 어느 영어교재나 주장하는 것이지만, 이미도씨의 책은 유난히 쉽다. 지하철 속에서 화장실에서도 술술 읽힐 법하다.
활어(活語)라는 말이 재미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막 건져올린 신선한 영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할리우드산 활어요리가’인 셈이죠. 책 내겠다 마음 먹은 건 7년쯤 됐는데, 어획량이 부족했었죠.”
11년 동안 번역일을 하면서 그는 늘 창작욕구에 시달렸다. 시나리오도 썼다. “번역일을 그만둘까도 했죠. 다른 이의 창작물에 2차 언어를 입히는 작업은 꽤나 답답했습니다.” 책쓰기는 돌파구였다.
1,000매가 넘는 원고를 보름 만에 썼다. “영화 ‘연인’으로 치자면 진청이(金城武)의 3일 사랑이 유더화(劉德華)의 3년 사랑보다 깊다고 할까요.번역일 했던 11년보다 책 쓰는 보름간이 더 행복했으니.”
미도라는 이름은 아름다운(美) 길(道)을 걸으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었다. 미군통역관이었던 아버지는 ‘미국에 가라’는 의미도 더불어 담았다. 이민 가려 미국에서 2년간 생활했고 공군 영어교육 장교로 복무한 후 외화 번역을 시작했다.
‘니모를 찾아서’ ‘뮬란’ ‘슈렉’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메리칸 뷰티’ ‘진주만’ 등 그의 손을 거쳐 간 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외화 번역업계를 독식하고 있다, 혼자 번역하는 게 아니더라 등 그에 대한 소문도 많다. 그만큼 유명하다는 소리다. “국내 수입되는 외화 중 제가 번역하는 작품은 전체의 7%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일 년에 스무 편 내외죠.”
불법복제 방지를 위해 개봉 전에는 테이프도 제공되지 않는다. 단 한번 시사회를 본 후 작업에 들어간다. 녹음기로 영화 대사를 녹음해 영화장면을 연상시키며 번역한다. 철저히 혼자하는 작업이다. “사고도 많았죠. 테이프가 씹히거나, 테이프 갈아 끼우는 동안 녹음이 안 된다던가…”
앞으로는 ‘번역/이미도’라는 크레딧을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외화 직배사들이 앞으로는 번역자의 이름을 넣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미도씨도 앞으로는 책 쓰는 일에 골몰할 계획이다.
“영어 공부법에 대해 많이 묻습니다. 제 대답은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라는 거죠. 영화는 특히 더 없이 좋은 교재입니다. 영화 ‘터미널’에서 톰 행크스도 그렇잖아요.”
/최지향기자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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