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11월18일 프랑스 철학자 자크 마리탱이 파리에서 태어났다. 1973년 툴루즈에서 졸(卒). 마리탱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가톨릭 지식인으로 꼽힌다.그의 생애를 기술할 때 꼭 언급되는 말이 ‘개종’이다. 개종은 넓은 뜻으로 자신이 믿었던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바꾸는 것을 가리키지만,기독교신학상의 좁은 뜻으로는 기독교의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전향하는 것을 가리키고 가장 좁게는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마리탱은 바로 이 가장 좁은 의미의 개종자였다.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난 마리탱은 24세 되던 1906년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던 아내 라이사와 함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 뒤 마리탱은 자신의 주저(主著) 제목처럼 ‘통합적 휴머니즘’으로 새로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그가 모색한 새로운 기독교는 중세 때처럼 신성성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세계의 가치들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다분히 세속적인 것이었다.
철학교수 자격을 얻은 직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접한 마리탱은 이 저작을 새롭게 해석하며 현대의 대표적인 신토마스주의 철학자가 되었다. 가톨릭을 매개로 극우단체 악시옹 프랑세즈와 잠깐 연을 맺기도 했지만, 마리탱의 정치사상이 반민주주의로 흐른 적은 없었다.
마리탱은 제2차 세계대전 초 아메리카로 망명했고 이내 드골의 자유프랑스에 가담했다. 그는 전쟁 중 ‘인권과 자연법’ ‘기독교와 민주주의’ 같은 책을 통해 기독교 사상과 계몽주의의 유산을 화해시키고자 애썼다. 마리탱은 1945년부터 48년까지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로 일했고, 그 뒤 1960년까지는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가르쳤다. 마리탱의 부음을 들은 교황 바오로 6세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했던 이 철학자가 ‘생각과 삶과 기도의 기술에서 진정한 거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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