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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잘못된 가족주의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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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잘못된 가족주의의 비극

입력
2004.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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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반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벤필드는 남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몬테그라노를 찾아갔다. 같은 나라임에도 불구, 번성하는 북부와 달리 가난과 범죄가 일상화한 남부지역 후진성의 원인을 탐구해 보고자 한 것이었다.연구결과는 1958년 “후진사회의 도덕적 기초”라는 책으로 발표됐다. 이책에서 벤필드는 남부이탈리아의 빈곤을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에서 찾고 있다. 비도적적 가족주의는 자신과 가족만의 물질적 이익을 단기간에 극대화하려는 정서다.

벤필드가 전하는 몬테그라노 마을 풍경은 비도덕적 가족주의의 비참한 결과다. 이 마을에는 무엇보다 자발적인 자선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조차도 자선에 전혀 관심이 없고, 신도도 많지 않다. 주민들은 사제들을 돈에 굶주린 위선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다루는 마을 소식지도 없고, 가끔씩 정부 전매품인 담배와 소금을 판매하는 가게 앞에 관보만 나붙을 뿐이다. 형편없는 도로의 보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할 뿐더러 관심도 없다. 공동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로를 노려보는 공동체 아닌 공동체가 몬테그라노였다.

지역사회의 이익이나 공동체를 위한 행동보다 목전의 이익만을 중요시하는 이런 사회의 성원들은 자신이 안 되면 자식에게라도 더 많은 교육을 시킴으로써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그러나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벤필드가 묘사한 몬테그라노는 사회의성원들이 자신과 가족만의 이익을 위해 살아갈 때 결국은 모두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민총생산규모 세계 11위 달성 이후 이제 양적, 질적 성장을 통한 선진국진입의 방법론을 논의해야 하는 우리에게 몬테그라노의 이야기는 뜬금없을수도 있다. 우리 경제성장의 양적 측면으로 보더라도 1950년대 남부이탈리아의 낙후된 마을과의 비교는 당치않다.

그러나 후진성의 원인이 사회구성원들의 지나친 이기주의, 자신과 확대된 자아로서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서라면 벤필드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자. 아무런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룩한 것이 교육열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성장 과정에서 이루어진 60, 70년대 교육은 지금처럼 사교육과 부모의 교육 계획에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교육은 오직 자신의 자식에게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믿음아래 이뤄지고 있다. 사교육과 각종 과외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무능이며, 이를 불평하는 것은 사회적 낙오자들의 투정일 뿐이다. 공교육에 대해 진정한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할 학부모는 얼마나 될까?

비뚤어진 교육열 뿐만 아니라, 정치의 장에서도 이런 행태는 쉽게 찾아 볼수 있다.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출범한 국회는 충성을 바쳐야 하는 보스가 없는 새로운 정치 환경에서도 정당들 간에 욕설에 가까운 공방만 주고받다가 끝났다. 의원 개인이 주목을 끌고 지지 세력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 라면 국회의 위신도, 정치의 품위도 안중에 없다.

비도덕적인 가족주의가 초래하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 학자들은 공동체 의식의 확보와 공동선의 창출을 강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족, 자신이 속한 집단만을 위한 이기주의는 사회발전의 동력이 아니라 그 협소함과 극단성 때문에 결국 공동체의 파괴를 초래한 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 사회를 탈출할 마음도, 여력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잘못된 가족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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