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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취지 못 살린 로스쿨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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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취지 못 살린 로스쿨案

입력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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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이른바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직업을 갖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시낭인’의 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회적 폐단을 초래하고 있다. 의대나 법대를 향한 입시과열, 대학에 만연하는 고시열풍으로 교육현실도 크게 왜곡되고 있다.이런 측면에서 전문직업인을 배출하는 교육체계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고 그 결과로 최근 의학전문대학원과 로스쿨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제대로 방향을 잡고 올바른 내용을 채워 갈 때 의미가 있다. 어설픈 변화는 발전보다 퇴행과 혼란을 낳을 위험이 있다. 이번에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제안한 로스쿨 도입 문제도 그런 점에서 방향과 내용이 제대로 세워졌는지 등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

현재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제안해 대법원에서 수용한 로스쿨 도입안은 현행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을 연차적으로 축소 폐지하고, 기존 법학대학 가운데 일부를 로스쿨로 전환하여 2008년부터 매년 1,200명 정도의 입학생을 선발해 실무 위주의 교육을 시켜 법률가로 배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런 로스쿨 안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법조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급급해 사법개혁의 내용을 별로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과 교육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스쿨의 도입 문제는 사법제도의 변화와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법학교육의 개편과도 관련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선 세 가지 큰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기존 법과대학들 가운데 소수를 로스쿨로 전환할 때 생기는 문제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과 전공의 서열 경쟁 때문에 교육시장이 왜곡되고 있는 마당에 각 대학이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해 벌일 경쟁의 후유증은 심각할 전망이다. 또한, 경쟁에서 낙오된 법대를 어떻게 할 것인 지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

둘째는 로스쿨 학생 숫자를 현재의 사법고시 합격자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숫자를 놓고 자율경쟁에 의한 사법서비스의 향상을 운위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셋째로 로스쿨이 실무교육에 치중, 인성과 이론교육이 자칫 소홀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법률가는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는 중요한 대상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인간적 소양을 지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인적 교육체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법학을 학문적으로 공부하여 시대변화에 맞는 법학 이론을 제공할 학자 양성과 관련, 현재의 논의구도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우리가 채택해야 할 법률가 양성기관은 미국식 로스쿨이 아니라 ‘법률에 관한 학문적 지식과 실무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전문적으로 연구, 교육하는’ 한국적 모형의 ‘법학전문대학원’이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하되 국공립대학 이상의 자율성을 보장해줌으로써 교육 주체들에게 창조적으로 운영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배출 인원은 적어도 매년 3,000명 이상이 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경복 건국대 불문과 교수 민교협 상임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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