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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수시 시대’ 달라진 고3 교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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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수시 시대’ 달라진 고3 교실 풍경

입력
2004.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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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월의 파랗던 하늘이 그 빛을 잃어가고 대신 교정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을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11월에 들어서자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잎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이제는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교정은 아름답지만 고 3학급의 풍경은 그리 밝지 않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수시모집 인원이 대폭 늘었기 때문에 합격자 수가 작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래서 전형 결과가 속속 발표될 때마다 학생들 간에는 희비가 교차된다. 담임으로서는 표정 관리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합격한 학생들에게는 내 일처럼 기뻐하며 얼싸안고 축하해 주지만 결과가 좋지 못한 학생들은 더욱 더 세심하게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녀를 여럿 둔 학부모 심정과 다르지 않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교실 문을 들어서는데 교실 뒤 출입문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같은 반 친구가 수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녀석은 결과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위로를 해 줄 요량으로 진학지도실로 가자고 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눈물을 쏟아낸다. 측은한 마음에 나도 눈물이 새어 나온다.

잠시 진정이 된 후 "노력한 만큼 보답이 헛되지 않을 터이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서 기다리자! 이제 수능시험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더욱 노력해야 하지 않겠니? 더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나 보다. 믿고 기다려보자. 아자!" 하면서 녀석의 표정을 살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담임의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수시 모집이 확대되면서 생긴 고 3담임의 고민거리이자 교실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아마도 전국의 고 3 담임이라면 다들 겪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고 3 담임에 애착이 가는 것은 슬픔과 기쁨을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소중한 경험은 고 3 담임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왕에 담임을 해야 한다면 머리가 하얗게 되어 정년이 가까운 60의 나이에도 고 3 담임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나도 아이들과 똑 같이 초조와 불안을 느끼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게 될 것이다.

이호천·충남 당진 송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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