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그저 단풍 빛이 고운 계절인가 했는데 참으로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유난히 화려했던 올 단풍이 이제 대부분 빛깔을 잃어갑니다. 지난 비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들은 대지를 덮여 참으로 고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섬세한 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계절입니다.사람은 사람을 속여도 자연은 그렇지 않을 듯 하지만 식물 중에는 아주 무서운 이면을 가진 나무들이 존재합니다. 무화과나무 집안이지만 흔히 대만고무나무라는 나무가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지요. 이 나무는 어떤 곳에서는 가까이 두고 키우는 관엽식물로, 다른 곳에서는 교살목(絞殺木)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지며 처절하게 싸우는 식물입니다.
이 나무는 동남아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 사는 상록성 나무입니다. 열대다우림지역은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 할 만큼 다양한 나무가 우거져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큼 그 숲속의 삶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지요. 나무들은 수 십 c씩 키를 올려 빛을 받으려고 투쟁하는 곳이지요. 교살목이라는 대만고무나무도 이런 숲속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삽니다.
무화과와 비슷하지만 작고 달고 맛있는 열매는 새에게 먹히고, 새똥에 섞여 배설된 씨앗은 나무 가지 사이 옴폭한 곳에 요행히 안착을 합니다. 처음엔 아주 작고 미미한 싹을 틔우고 살게 된 곳이 나무 위이니 이곳에서 지면으로 뿌리를 천천히 내려뜨립니다. 다행히 이러한 밀림에는 공중의 습도가 많아 충분치는 않아도 대기 중에서 수분을 공급 받아 뿌리가 자랍니다. 그래서 이런 뿌리를 기근(氣根)이라고 부르지요.
이때까지 위협적이지 않던 나무가 일단 뿌리를 내리면 충분한 양분과 수분을 공급 받게 되고 줄기와 잎을 급속히 펼치고, 나무 위라는 유리한 고지에서 햇볕까지 받으며 더욱 왕성히 자라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실처럼 가늘던 기근들은 쑥쑥 굵어지고 많아지면서 마치 바구니처럼 이리저리 얽혀 큰 나무의 줄기를 목조이듯 조입니다. 급기야 큰 나무를 죽인 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지요. 참 대단히 공격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대만고무나무가 난대지역 같은 곳에 자라게 되면 이 나무는 다른 나무를 이용한 후 조여 죽이는 끔찍한 일은 하지 않고 아주 정상적으로 싹 틔우기를 해서 여느 나무처럼 자랍니다.
이 나무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아주 상반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각박한 세상에서 어떤 환경과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무서운 일이 많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흉폭한 사람으로 키워낼 수 밖에 없는 토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더욱 어려운 계절입니다. 우리의 작은 힘과 마음으로 사람들도 모두 정상적으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조금씩 토양을 바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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