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12월. 국내 5대 은행 중 하나였던 제일은행이 뉴브리지캐피탈이라는 미국계 펀드에 팔렸다. 국내 금융계에 외국자본이 진입하는 신호탄이었다. 정부 지분의 49% 가량을 파는 매각 대금은 총 5,000억원(주당 5,000원). 당시 정부는 헐값 매각 논란에 대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5년 뒤. 이제는 뉴브리지가 영국계 은행 HSBC에 제일은행을 파는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다. 추정되는 매각 가격은 주당 1만5,000~1만7,000원. 뉴브리지는 5년 새 투자원금의 2배가 넘는 차익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제일은행의 또 다른 대주주인 정부의 성적표는 어떨까. 제일은행에 17조여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까지 회수한 돈은 10조원 밖에 안된다. 이번에 뉴브리지와 같은 조건으로 HSBC에 정부 지분을 전량 매각해 뽑아낼 수 있는 추가 회수액도 1조5,000억원을 조금 넘는다. 결국 정부는 5조원 이상의 공적자금 손실을 보게 되는 셈이다.
사실 이것은 예상된 결과다. 뉴브리지가 지분 30% 이상을 제3자에게 팔 경우 정부도 동일 물량을 같은 가격에 매각토록 하는 족쇄가 애초의 계약 내용에 들어 있다. 정부는 사실상 1대 주주(51.51%)이면서도 매각 대상과 시기, 가격 등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 채 이번 매각 협상을 손 놓고 바라보는 처지다.
정부는 최근 ‘공적자금관리백서’에서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일은행을) 매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반성할 점이 있다"고 했다. 뒤늦은 자성이나마 다행스럽지만, 이것만으로 면책이 될 수는 없다. 더 이상 국민 혈세가 고스란히 외국 자본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시스템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이영태 경제과학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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