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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헤르만 헤세 산문·시집 등 4권 완간 - 헤세에게 듣는 따뜻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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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헤르만 헤세 산문·시집 등 4권 완간 - 헤세에게 듣는 따뜻한 위안

입력
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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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학 독문학과 신입생들조차 태반이 안 읽고 들어오는 세태가 됐지만, 헤르만 헤세(사진)는 앳됨의 끄트머리에서, 혹은 실존의 고민이 시작되는 격랑의 한 가운데에서 반드시 맞닥뜨려야 했던 ‘통과의례’ 같던 때가 있었다. ‘수레바퀴 밑에서’가 그랬고, ‘데미안’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혹은 ‘지와 사랑’)’가 그랬다. 그 시절을 넘기고 삶의 정점마저 지나친 이들, 스스로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헤세는 변치않는 우정을 보내는 드문 문호다. 어쩌면 안개처럼 막연한 느낌으로 떠돌던 지난 시절의 ‘헤세’는 나이깨나 먹어서야 사뭇 선연한 실체로 손을 내민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 즈음 읽게 되는 ‘유리알 유희’나 ‘황야의 이리’는 또 어떤가. 철학적 사유가 아닌 상처를 통해 맺어왔을 그의 작품 속 풍성한 아포리즘의 문장들은 스밈의 방식 역시 상처를 통해서만 가능하겠기 때문일 것이다.헤세의 산문을 테마별로 엮은 세 권의 책 ‘삶을 견뎌내기’ ‘영혼의 수레바퀴’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가 시집 ‘인생의 노래’와 함께 3년 만에 완간됐다(이레 발행). 이런저런 판본으로 흩어져있던 그의 작품들이 민음사 헤세전집과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게 10여권에 이르니, 그럭저럭 헤세의 틀을 갖추게 된 셈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삶을 견뎌내기’에는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 아래 40편 가량의 짧은 산문과 시가 담겨 있다. 그 첫 글 ‘작은 기쁨’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쁘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기쁨에 대적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그러더니 그는 자신보다 한 세기 먼저 살았던 낭만파 시인 슐레겔의 게으름 예찬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그가 해야만 했다면, 그는 얼마나 긴 한숨을 내쉬며 괴로워했겠는가!’ 그는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빠르게!’를 목표로 삼은 삶이 쾌락은 더 많이 누릴 지라도, 즐거움은 오히려 잃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문학 신간을 몇 주일 지나도록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의 삶을 본다면 헤세는 어떤 절망의 한숨을 쉴까. 모르긴 해도 그는 그래도 희망의 자아찾기를 그치지 않았을 사람이다. ‘당신은 정말 행복한가’라는 글에서 그는 좋고 나쁨이 교차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기억의 한 토막으로 승화하는 ‘기억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삶에 대한 열정과 따스한 온기와 눈부신 빛이 그 짧은 (기억의)순간에 표현되는지 아는 사람은 새로운 날에 주어지는 선물을 받아들일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에서 그는 "평생 잠 못 이루는 밤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은 가장 순진한 영혼을 가진 어린아이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생각과 감정의 흐름과 기억들이 자신을 압도하는" 불면의 순간은 "영혼이 추억과 양심의 거울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감각이 함께하고 분별력이 감정의 흔들림과 판단 미세한 비교 익살의 미묘한 의미에까지 상관하며 활동하는’ 낮 시간에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 낮의 감성은 절대 순수하지 않다. 자신의 정신병원 입원과 자살시도 경험 등 순탄치 않았던 삶을 통해 얻은 치유와 위안의 교훈들을 헤세는 시종 체온을 담아 전하고 있다.

먼저 나온 ‘인생의 노래’는 그의 시를 골라 모은 것이고, ‘영혼의 수레바퀴’는 문학과 사유의 토대가 됐던 종교와 신화의 담론,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작가의 고향인 독일 남부 산골 도시 ‘칼브’의 자연과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과 예술론 등이 담겨 있다. 그의 문학을 알차게 읽기 위해서든, 독립적으로 읽든 아무래도 좋은 책들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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