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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實利외교가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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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實利외교가 능사 아니다

입력
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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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제후 양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맹자의 이야기는 인의로서 내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좀 더 넓히면 춘추전국 시대의 대외관계를 실리로서만 이끌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의 국제관계 인식이 녹아 있다.19세기 사회진화론 도입 이후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국가의 강한 힘만이 그 나라의 이익을 보존하며, 강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실리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리외교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세계의 가장 중요한 외교 원칙이며, 이러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세상의 흐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익과 힘만을 앞세운 외교는 눈앞의 이익을 취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세계 여론의 비난을 받아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 모든 전쟁들은 늪에 빠져 헤어져 나오지 못하는 강대국과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는 약소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아직도 약육강식의 시대정신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 하에서 우리 외교의 기본원칙 또한 실리를 챙기는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가 약소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약소국과의 인의보다는 강대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서 실리를 챙겨왔다. 이에 따라 한국은 엄청난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었고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은 결코 곱지 않다. 빠른 시간 내에 경제성장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고, 다이나믹한 사회적 힘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낸 사실로 주목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의리와 상관없이 실리만을 챙기는 나라라는 비난의 화살도 받고 있다. 얼마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강의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이 미국의 눈치를 잘 보았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 한 이집트 관료의 지적은 얼굴을 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양반전’에서 실리만을 챙기는 천부(賤富)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돈만 아는 스크루지 영감을 부정적으로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들은 ‘실리’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국가의 정책에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일본을 비난하고,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의 의도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면서, 한국군의 해외 파병, 타이완과의 외교관계 단절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있다.

이사를 가면, 김장을 하면,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이웃집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먹는 미덕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주위 아시아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강대국들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우리가 과연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웃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국제관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를 도와주고 삶이 어려운 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사람을 볼 때 우리 후손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가능성을 본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 후 또 다시 주판을 들고 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볼 때 어두운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남들이 다 실리를 추구하는데 우리만 실리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명분과 의리도 지키자는 것이다. 청산할 것은 국내문제만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도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의리와 명분을 앞세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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