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첫 방송하는 KBS2 ‘해신’(극본 박상현, 연출 강일수)은 KBS표 정통사극과는 다소 ‘혈통’이 다르다.여전히 해상왕 장보고란 ‘영웅’을 내세우지만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터라 내용의 90%를 픽션으로 채운다. 장보고를 노예 검투사로 설정한다든지, 신라의 상권을 한 손에 틀어쥔 귀족 자미부인(채시라)와 그의 제자이자 훗날 신라 제일의 여각 주인이 되는 정화(수애) 등 가공의 인물을 내세우는 식이다. 통일신라 시대 당과 신라를 오가는 드라마의 시간과 공간도 기존 사극의 주무대와는 딴판이다.
제작진은 ‘다모’나 ‘대장금’처럼 역사적 실체에 대한 강박에서 풀려나 한 인간의 성공과 사랑에 초점을 맞춘 또 한 편의 ‘새로운 사극’을 보여줄 참이다. HD 영상에 담은 중국의 풍광,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해 낼 해상전투 장면 등 비장의 무기가 적지 않지만, 성공의 핵심 열쇠는 역시 장보고 역의 최수종과 그의 라이벌 염장 역의 송일국 손에 쥐어져 있다. 최수종은 ‘태조왕건’의 전형적인 남성영웅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이고 매혹적인 인물을 그려내야 하고, 송일국은 그에 맞서 그럴 법한 악역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경기 용인 민속촌 촬영 현장에서 만난 최수종은 최근 두 달간의 중국 촬영에 대해 "도망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8월 완도에서 연 제작발표회 때만 해도 "‘태조왕건’을 4년이나 찍으면서 별별 고생 다 해봤기 때문에 이젠 어떤 사극이라도 다 할 수 있다"고 했던 그였다.
그를 가장 괴롭힌 건 모래였다. "장보고가 당에 노예로 팔려가서 생활하는 부분을 둔황에서 찍었는데 어휴, 거긴 모래바람 때문에 마스크 안 쓰면 살 수가 없어요. 모래산을 오르는 장면에서는 발이 푹푹 빠져 1시간 걸려 겨우 올라갔는데 NG가 난 거에요. 기절이에요, 기절."
하지만 그는 "사막에서 촬영해서 화면 자체도 다르고 액션 장면도 많다. 정통사극의 대사투도 거의 없다"며 ‘새로운 사극’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송일국은 당초 염장 역을 맡은 한재석이 병역비리로 도중하차 하면서 ‘대타’로 캐스팅 돼 중국 촬영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동안 연기보다는 ‘김두한의 외손자’ ‘탤런트 김을동의 아들’로 눈길을 끌었던 그는 ‘애정의 조건’에서 박력 넘치면서도 다정다감한 나장수 역을 맡아 시쳇말로 ‘떴다’. 난생 처음 어머니한테 연기 칭찬도 들었단다.
"중국에 있을 때 어머니가 ‘애정의 조건’ 마지막 회를 보고 전화를 하셔서 ‘아들아, 참 잘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염장 역도 ‘애정의 조건’을 함께 한 채시라 선배의 추천으로 맡게 됐다"면서 "운이 참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보고의 평생 숙적으로 설정된 염장은 해적들 손에서 자라난 냉정한 인물. 장보고만 바라보는 여인 정화를 놓고 묘한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해신’은 "악역 빼놓고는 다 해봤다"는 데뷔 17년차의 최수종과 "아직도 왜 감독님들이 저를 쓰는지 미스터리"라고 말하는 송일국 개인의 연기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모처럼 ‘새로운 사극’을 선보이겠다고 나선 KBS로서도 대단한 모험이다. ‘해신’이 ‘다모’의 뒤를 이어, 혹은 ‘다모’를 넘어 사극의 역사를 새로 써나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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