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2일 오후3시(한국시각 오후10시)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 마련된 묘역에 영면했다. ★관련기사 10면팔레스타인 주민 10만여 명이 국부(國父)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기 위해 몰려든 라말라엔 억눌렸던 팔레스타인 민족 감정이 폭발했다.
팔레스타인 국기와 아라파트 수반의 영정을 든 팔레스타인 주민 수 천명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청사 내까지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묘역 일부가 붕괴되기도 했다. 오후2시께 아라파트 수반의 유해를 실은 헬기가 청사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오열과 함께 "아라파트 수반에게 피와 영혼을 바친다" "아라파트 수반을 독살한 이스라엘의 피를 마시자"는 구호가 울려 퍼졌고, 헬기 착륙과 동시에 조문의 의미인 총격음이 청사를 진동했다.
아라파트 수반의 유해는 하늘을 향해 소총을 난사하는 눈물 범벅의 주민들에 의해 에워 싸여 도착 30여분 후에야 헬기 밖으로 나왔다. 팔레스타인 국기에 싸인 관은 그가 2001년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유폐됐던 청사 내를 돌았으며, 군인과 경찰까지 운구차에 올라 총을 쏘며 아라파트를 찬양하고 대 이스라엘 투쟁을 다짐하는 구호를 외쳤다. 자치정부 측은 소요를 우려해 별다른 절차 없이 서둘러 아라파트 수반의 유해를 매장했다.
매장식 참석이 봉쇄된 가자지구에선 이집트에서 라말라로 가는 헬기의 모습이라도 보려고 수천 명이 건물 지붕과 창문에 몰려 나왔고, 수 만명이 자체적으로 상징적 장례식을 치렀다.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경계 태세를 최고 수위로 올렸다. 이날 가자지구 유태인 정착촌에 박격포 3발이 날아들었으나 사상자는 없었다.
앞서 이날 오전10시 이집트 카이로 인근 헬리오폴리스의 사원·병원 복합단지인 알 갈라아 내 모스크에서 50여개 국의 조문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를 비롯해 예멘 알제리 시리아 레바논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의 원수들이 직접 참석해 이슬람 정상회의를 방불케 했다.
한국은 윤영관 전 외교장관, 일본은 전 외교장관인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총리 보좌관을 조문사절로 파견했으며,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현직 외무장관을 보내는 등 국가 그룹별로 사절단의 격을 맞춘 모습이었다. 미국은 중동특사를 지낸 윌리엄 번스 국무부 차관보를 파견했다. 이집트와 아랍연맹, 북한과 쿠바는 3일의 조문기간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특별 성명을 발표해 "아라파트 수반은 아랍 뿐 아니라 전세계 억압 받는 자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면서 "피압박민의 크나큰 손실"이라고 애도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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