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있다. 이맘때면 나는 곳간문 앞에 서 계신 외할머니가 떠오른다.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곶감을 한 개 건네시면서 "선주야, 곶감 먹어라"하고 말씀하신다. 감 껍질 말린 것과 함께 건네시는 곶감은 햇볕에 그을려 검은 것이 외할머니 손과 닮았었다. 배고프던 시절의 그 곶감은 달디 달았다. 그래서 늘 추억의 언저리에는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머니 모습이 어른거린다.
군에 갔다 온 후로 자주 인사 드리지 못한 것이 미안하여 그런 걸까? 외할머니가 생각나면 못내 서러워 불효자 같은 심정이 된다. 맛난 것 그득하게 한 상 차려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서럽다. 올해는 가을이 가기 전에 곶감을 만들어 볼 작심을 했다. 아내의 학부형이 감을 보내온 터라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곶감을 만들어 보았다.
땡감 껍질을 깎고 감 가운데로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은 뒤 커튼 고리에다 줄줄이 엮었다. 한 줄에 6개씩. 일부는 대나무 바구니에다 널어 놓았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덤으로 주셨던 깎은 감 껍질도 함께 볕에 널어 두었다. 그런데 공기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인지 곰팡이가 슬었다. 20개 중 절반 이상이 곰팡이로 뒤덮여 실패작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감을 통째로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감 하나를 5등분하여 빛이 잘 들고 공기소통이 잘 되는 배란다 바닥에 놓아두었다. 이것들이 곶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저녁으로 공기소통이 잘 되도록 해 주며 정성을 쏟고 있다. 정성을 쏟은 곶감을 아이들에게 맛보게 해 줄 작정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옛날 곶감 얘기는 그저 옛날 얘기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옛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자주 옛 고향의 곶감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황선주·대구 경북기계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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